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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 서평] 한국 추리소설의 모순 가득한 출발점
저자: 김내성
출판사: (주)페이퍼하우스

1930년대 후반의 경성. 공작부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세계적인 무용가 주은몽은 결혼식을 앞두고 주홍빛 망토를 둘러쓴 괴인의 습격을 받는다. 그 이후 은몽의 주변에는 불길한 기운이 감돌고, 발신인을 알 수 없는 협박장이 연달아 날아든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와 결혼할 예정이었던 백만장자 백영호가 한밤중에 피살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필사적으로 수사하는 경찰을 비웃기라도 하듯 범인의 종적은 묘연할 따름. 그리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제2, 제3의 참극! 은몽을 노리는 괴인 '해월'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그리고 시민들의 기대를 한몸에 모으고 있는 명탐정 유불란이 이 사건을 놓고 고민하는 이유는?

1939년에 조선일보에 연재된 직후에 단행본으로 출간된 김내성(혹은 김래성)의 장편 추리소설. 출간 5년 만에 18판, 광복 후 30판을 찍어낼 정도로 인기를 끌었으나, 워낙 오래된 작품이라 이름은 많이 들어봤어도 정작 실제 작품을 읽어보기는 어려웠던 것 또한 사실이다. 한동안 전설로만 전해지던 것을 최근에 판타스틱 편집부에서 가장 오래된 현존 판본인 1940년도 재판본을 바탕으로 복원 출간한 덕분에 온전히 그 내용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최대한 어려운 고어(古語)를 배제하고 읽기 쉽게 편집하였으나 원문이 갖고 있는 시대적 한계 때문에 여러 가지 면에서 낯설게 느껴진다는 한계도 있다. (현대 독자가 공부 삼아 일제시대 신소설 읽을 때 느끼는 위화감을 연상하면 대략 상상이 갈 듯)

초반에는 여러 가지 곁가지를 빈틈없이 배치하여 다소 복잡해 보이기도 하지만 중반부터는 점차 이야기의 핵심에 접근하면서 의외로 단순한 스토리로 흘러간다. 신출귀몰한 복수귀, 협박장, 서양 가옥에서 벌어지는 연속 살인, 위험에 빠져 도움을 청하는 묘령의 여인, 댄디한 중산층 명탐정, 그런 탐정을 달가워하지 않는 수사관, 감쪽같은 변장과 성대모사, 심지어 클라이막스에 이르면 숨막히는 자동차 추격전(...)과 [다소 비겁한 2중범인 트릭(...)]까지 튀어나오는 것이 그야말로 당시 서양 추리소설에서 시도되었던 갖가지 컨셉을 다채롭게 펼쳐 보이는 추리 백화점이라 할 만하다. 물론 수십 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원한의 역사와 억울한 일을 당한 자의 한 맺힌 복수, 그리고 체포되기 일보 직전에 반드시 자살하는 범인이라는 클리셰도 빼놓을 수 없다.

살인의 속임수나 진범으로부터 시선을 돌리기 위한 낚싯밥 등등은 비교적 흔한 패턴이라 사실 중간까지만 읽어가면 누가 범인이구나 하는 건 대충 윤곽이 드러난다. 하지만 그러한 윤곽을 꼼꼼하게 추적하면서 독자가 대략 '이렇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게 될 만한 시점에 극중 인물들도 '이런 것 같은데!'라고 해당 포인트를 짚어나가는 솜씨가 꽤 절묘하다. 극중 인물들의 신파조 가득한 감정표현이나 지나치게 친절한 설명으로 상상의 여지 자체를 봉쇄하는 해설 등등은 요즘 보면 마이너스 요소겠지만 문맹률이 상당히 높았고 지적인 추리보다 감정적인 멜로드라마에 익숙했었던 발표 당시의 대중들을 생각해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하겠다.

소설 자체는 저자의 탄탄한 구성력과 명쾌한 문장, 그리고 생동감 있는 등장인물들 덕분에 꽤 술술 잘 읽힌다. 등장인물들의 면면은 대중소설의 특성상 스테레오타입에 빠질 수밖에 없었지만 다들 겉으로 꾸미는 태도와는 달리 이기적이고 어른답지 못한 진심을 속에 감춘 채 불꽃 튀기는 접전을 펼치는지라 제법 인간적으로 느껴진다. (탐정역인 유불란까지도 100% 완벽한 초인은 아니며, 모종의 약점으로 인해 고뇌하는 모습을 보여줘서 신선했다. 그 때문에 사건 해결이 늦어지니까 좀 욕을 먹어도 싸겠다 싶긴 하지만) 첫머리에 어떤 인물이 아르센 뤼팽을 모방한 차림새로 가장무도회에 나타난다던가 셜록 홈즈의 그 유명한 대사나 추리할 때의 버릇을 인용한다던가 하는 동인지스런 면모도 보여줘서 흥미롭다.

문제는 아무래도 서양에서 확립된 장르를 일본을 통해 수입하여 무리하게 당시 조선을 배경으로 창작하다보니 실제 조선 사회와는 백만광년정도 떨어진 판타지의 공간 속에서만 이야기가 진행될 수밖에 없다는 것인데, 여기에 더하여 사실상 일본의 영향 하에 있는 식민지 시대라는 상황과 추리소설을 수용할 독자층이 상당히 한정되어 있었다는 문제 등등이 더욱 더 본 작품의 스타일을 괴이하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고 여겨진다. 이야기는 대부분 일반 민중과는 상관없는 상류사회를 배경으로 펼쳐지며 가끔 가다 사건의 진행상 끼어드는 하층계급의 인물들은 주인공들과 잘 얽혀들지를 않고 어색하게만 느껴진다. 또한 앞에서도 말했듯이 해설자가 무성영화의 변사처럼 별 쓰잘 데 없는 것까지 과장된 투로 설명해버리다 보니 추리물이라기보다는 추리적 요소를 전면에 내세운 모험 멜로드라마의 성격이 강하다.

주인공 유불란은 작품 속에서 끊임없이 '탐정은 로맨티스트가 아니라 리얼리스트여야 사건을 제대로 추리할 수 있다!'라고 부르짖지만 정작 작품 자체는 그러한 이상을 따라가지 못하고 냉철한 추리와 울분 가득한 로망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인상이 강하다. 마지막에 사건을 해결한 유불란이 [자신의 인간적 한계를 통감하고 탐정 폐업을 선언]하는 데까지 이르면, 이 작품 이후 점점 정통 추리소설에서 멀어진 끝에 결국 순문학으로 회귀하여 일생을 마감하는 작가의 실제 모습이 겹쳐져 왠지 모를 안타까움까지 느껴진다. (당시 한국 추리문학의 한계와 본 작품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권말에 실린 정혜영 교수의 해설을 참조하기 바란다) 당시 상황을 생각해 보면 이 작품은 시대에 비해 너무 일찍 나왔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흥미로운 책을 리뷰할 기회를 주신 판타스틱 편집부에 감사드린다.


ps1. 유불란이 김내성의 다른 작품에 등장하는지 어떤지는 안 봐서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한 편의 소설로 대중에게 상당히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것만은 틀림없다. 80년대에 일본만화 '월광가면'의 해적판을 본 적이 있는데, 거기서 주인공 탐정의 이름이 무려 '구불란'(...)으로 번안되어 있었던 기억이 난다.

ps2. 골때리는 대사 첫 번째.
"무척 긴급한 일이 있다고 하여 밖으로 내보냈습니다."
............범죄 현장에서 참고인을 못 나가게 하는 건 수사의 상식 아니었나? OTL

ps3. 골때리는 대사 두 번째.
"은몽 씨! 나는 이제 방금 은몽 씨의 목숨이 나 자신의 목숨보다 더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진지한 장면인데 왜 이리 웃기지 OTL

ps4. 골때리는 대사 세 번째.
"알아요! 잘 알겠어요! 유 선생님의 말씀은 정신병자!"
............요즘식으로 옮기면 '그만하란말야 이 병맛새퀴야' OTL

ps5. 유불란의 갖가지 능력은 뭐 출중하긴 하지만 탐정이면 그정도는 다 하지 않나...싶은 것들 뿐인데 딱 하나 입이 딱 벌어졌던 게 뭔고 하니, 외국여행갔을때 미국 변호사와 친구 먹고 그 뒤로 필요한 정보 있으면 전보 쳐서 '상세히 보고하라'고 명령(아무리 봐도 부탁이 아니라 명령)까지 내리는 거 OTL
by 잠본이 | 2009/06/07 20:35 | 대영도서관 | 트랙백(1) | 핑백(1)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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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Horror movi.. at 2009/06/17 13:02

제목 : [마인 서평] 김내성의 마인 - 한국 장르문학의 시..
마인 - 김내성 지음/판타스틱(계간지) 세계적인 무희 주은몽은 결혼식을 앞두고 주홍빛 망토를 둘러쓴 괴인의 습격을 받는다. 주은몽의 목숨을 노리는 괴인의 정체는 무엇일까? 칠십만 경성 시민을 경악케 한 잔혹한 복수극이 잇달아 벌어진다. 숨 가쁘게 반전을 거듭하는 사건 속에서 번득이는 명탐정 유불란의 날카로운 추리가 펼쳐지는데… (알라딘 책소개) 한국 최초의 추리소설 작가, 출간 5년만에 18판, 광복 후 30판, 경성을 종횡무진하는 명탐정! 게......more

Linked at 잠보니스틱스 : 검은별 at 2009/10/11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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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행인1 at 2009/06/07 22:35
창작년도를 생각해보면 괜히 뭐 잘못썼다가 사상범소릴 듣지 않을까 작가가 고심했을듯 합니다. 광복 이후라고 크게 나아지지 않았겠지만...;;;
Commented by 네오바람 at 2009/06/07 23:26
아무래도 옜날 글이다보니 여러가지 문제점이?
Commented by 물고기 at 2009/06/09 20:42
유선생님의 말씀은 정신병자! 라...

덕스럽게 옮기면 유선생님 바보바보~ 쯤 될려나요(...).
Commented by kreige at 2009/06/16 09:49
아하하 orz
그래도 골 때리는;; 세 번째 대사는 꽤 깜찍하지 않았나요? 나만 그런가 (....)
Commented by ssita at 2009/06/17 13:04
장르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물씬 풍기는 작품이었습니다. 요즘에도 이런 작품이 많이 나와준다면 정말 고마울텐데 말이죠.

문어체 대사는 아주 즐거웠습니다. 등장인물들이 귀여워 보이기도 하고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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