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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 ROBOT
저자: 정희자 외 9인
출판사: 황금가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꾸준히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국내 작가 10인의 SF단편을 모은 작품집으로, 황금가지에서 출간한 SF단편선으로는 두 번째에 해당한다. 수록된 작품들은 다른 경로를 통하여 발표된 것을 다시 수록한 경우가 많은 관계로, 특별한 주제의 일관성이나 공통점을 찾기는 어렵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작품별로 간단한 감상 포인트를 짚어보고자 한다.

■ U, Robot / 정희자
양자 컴퓨터의 발달로 탄생한 초소형 인공두뇌와 인간의 클론 육체를 결합하여 만들어진 제2세대 로봇의 등장과 그들을 둘러싼 갈등, 그리고 그러한 갈등을 피하기 위해 로봇들 자신이 감행하는 최후의 선택을 그린 작품. 기계로 육체를 보완한 인간이 아니라 정반대로 생물의 육체를 지닌 로봇이라는 역전의 발상은 독특하지만 로봇 반대파가 보여주는 편집증에 가까운 거부반응이나 천사에 가까운 순진함과 완전무결한 지성을 과시하는 로봇의 모습은 다소 진부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양육자 역할을 맡은 인간과 로봇 사이의 기묘한 유대를 보노라면 과연 진정한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인간과 그 창조물의 관계는 어떤 것이 되어야 할는지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 박시은 특급 / 곽재식
천문연구 중에 뜻하지 않게 외계인의 전파를 잡아내어 일약 스타가 된 주인공. 그러나 과학자 특유의 집착과 협소한 인간관계 탓에 주변 사람들과는 점점 멀어지게 되는데… 과학적인 발견이나 특이한 설정보다는 질투와 오해 때문에 대단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을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보는 주변인들과 사소한 문제로 인해 부조리한 고독에 빠져드는 주인공의 갈등에 초점을 맞춘 인간 드라마. 외계와의 교신은 그 자체가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기보다는 위에서 말한 주인공의 고립을 극적으로 해소하고 그와 세상의 화해를 촉구하는 매개체로 기능한다.

■ 잘 가거라 내 아들 엄마는 널 사랑했단다 / 박성환
머나먼 행성으로 파견된 심우주 탐사선이 사고를 당하여, 그 우주선 안에서 수정란 상태로 동면 중이던 개척민 후보들 중 한 명만이 살아남는다. 고장을 일으킨 우주선의 인공지능은 살아남은 아기를 친자식처럼 정성들여 키우지만, 충분히 자아를 확립할 정도로 자라난 아이는 매사에 지나치게 간섭하는 인공지능에게 염증을 느끼고 탈출 계획을 세운다. 본문 중에서도 밝히고 있는 것처럼 컨셉 자체는 아서 C. 클라크의 『2001 :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묘사된 HAL-2000 사건을 변주한 것이지만 한국 어머니들 특유의 치맛바람과 연결지어 컴퓨터 엄마와 인간 아들 사이의 긴장감 넘치는 애증관계를 빚어내는 데 성공했다. 비뚤어진 우리의 교육현실을 비꼰 이야기로 볼 수도 있지만, 시스템에 의해 양육되고 통제당하는 개인이 천신만고 끝에 자유를 회복하는 보편적인 성장 이야기로 읽어도 문제는 없다.

■ 파라다이스 / 박애진
대부분의 인류가 달로 이주하고 지구는 거대한 쓰레기장이 되어버린 미래. 이제 지구 위에는 환경보존과 유물 발굴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작업기계들과 그 안에서 조종을 담당하는 소수의 인간들만이 있을 뿐이다. 달에서 조종사로 일하던 주인공은 실연의 고통을 잊고 스스로의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지구로 온다. 황폐한 지구의 현실과 과거의 달콤 쌉싸름한 연애 이야기가 교차하면서 주인공의 보일 듯 말 듯하게 요동치는 감정이 섬세하게 묘사된다. 외부 사건보다 내면적인 의식의 흐름이 더 중요하게 다루어진다는 점에서는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들과도 통하는 면이 있다.

■ 천사가 지나가는 시간 / 김주영
인간은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가족이나 반려동물에게 의지한다. 정교한 안드로이드가 개발되어 이러한 역할을 대신하게 된다면 과연 인간은 진실로 행복해질 수 있을까? 이 작품은 안드로이드 제조 회사에서 일하는 프로그래머의 눈을 통하여 이러한 설정에서 파생되는 여러 가지 문제를 가볍게 짚어보고 있다. 안드로이드를 지나치게 사람처럼 생각하여 낭패를 보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처음에는 사람처럼 여기다가도 어쩔 수 없이 기계임을 의식하여 정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대화 도중에 갑자기 모든 흐름이 끊기고 침묵만이 지배하는 순간이 오면, 인간은 누구와 함께 있더라도 근원적인 고독을 실감하게 된다. 이상적인 파트너인 안드로이드를 곁에 둔다 해도, 그런 순간을 피할 수 있을까? 기술문명이 해결하지 못하는 미묘한 문제를 통하여, 사람과 사람 사이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

■ 우주류 / 정소연
어린 시절부터 우주에 대한 갈망을 키워오던 주인공이 인생의 갖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꿈을 향한 발걸음을 조금씩 내딛는 과정을 바둑에 비유하여 차분하게 그려낸 단편. 원래는 만화 스토리로 기획된 작품으로, 제2회 과학기술 창작문예 만화부문 가작을 수상했다. 작화는 현재 모 게임 사이트에서 웹툰 작가로 맹활약중인 원사운드님이 맡았다. 당장의 괴로움과 절망을 딛고 훨씬 장기적인 관점에서 삶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가꾸어가는 주인공의 여정과, 그런 주인공을 결코 다그치지 않고 묵묵히 응원하는 어머니의 지혜가 잔잔한 감동을 자아낸다.

■ 무기여 잘 가거라 / 임태운
우주 저편의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행성에서 두 종족의 처절한 교전이 벌어지고, 그 와중에 전황을 좌우할 만한 신병기의 설계도가 감쪽같이 사라진다. 한편 지구에서는 한심한 고교생의 표본으로서 별 볼일 없는 청춘을 보내던 주인공이 운명의 여인들을 차례로 만나가며 카사노바도 부럽지 않을 편력을 벌이게 된다.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이 두 사건이 대체 어떤 식으로 연결되는 것일까? 평범한 남자의 성적(性的) 판타지와 기상천외한 SF설정이 결합하여 뜻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는 유머러스한 이야기.

■ 미래관리부 / 듀나
2010년대의 근미래. 자기들이 미래에서 온 인류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수수께끼의 존재들이 제공한 기술과 정보 덕분에 세상은 보다 윤택해진다. 하지만 후손들의 정체가 과연 그들의 말대로인지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그리고 만약 그들이 진짜 미래인이라면 그들의 개입은 역사를 수정하는 결과를 낳지 않을까? 작가는 이런 치명적인 문제에 대해 어떤 해답도 주지 않고, 어떤 식으로든 바뀌어가는 세계와 그 속에서 행복하지만 어딘가 공허한 삶을 살고 있는 현대인들의 모습만을 보여줄 따름이다. 냉랭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시니컬한 현실의식, 여성들 사이의 야릇한 감정, 미래의 운명보다 당장의 욕구에 충실한 태도 등등 이 작가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요소들도 여전하다.

■ 다섯 번째 감각 / 김보영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청각을 잃어버린 인류. 그들은 점차 시각 위주의 문화에 적응하면서 ‘소리’를 하나의 전설이나 신화로 취급하는 단계에까지 도달한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점점 청각을 회복한 인간들이 나타난다. 그들은 사회의 압박을 무릅쓰고 ‘소리’의 위대함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청각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게 된 지배층의 눈에는 그들이 단순한 이단자로 비칠 뿐이다. 그러한 내막을 전혀 모른 채 평범하게 살아가던 주인공은 의문의 사고로 언니를 잃은 후 점차 세계의 진실에 눈뜨게, 아니, 귀 기울이게 되는데… 너무나도 일상적이고 당연하게 여겨지는 청각을 소재로 하여 놀랄 만한 역전의 발상을 펼쳐 보이는 걸작으로, 어떤 첨단기술도 신기한 가제트도 등장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수록 단편들 중에서는 ‘사고실험’이라는 SF의 본질에 가장 충실한 작품이다. 100쪽에 가까운 분량을 생각하면 단편이라기보다는 중편에 가까운데, 그만큼 내용도 더 알차고 풍부하게 되어 있다.

■ 매뉴얼 / 배명훈
철모르는 어린 아이가 휴대전화 매뉴얼을 집어 들고 자기 멋대로 읽기 시작한다. 그 아이의 손 안에서 매뉴얼은 원래 기록된 내용과는 상관없이 무시무시한 예언서로 돌변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아무 의미 없는 애들 장난일까? 텍스트와 인식의 미묘한 어긋남, 다차원 세계의 투쟁, 이모와 조카의 사랑 등등 흥미로운 소재로 가득하지만 뭔가 결정적인 이벤트가 일어나려는 순간 이야기가 딱 끝나버리기 때문에 다소 아쉬운 감이 있다. 독립된 단편이라기보다는 뭔가 더 거대한 이야기의 프롤로그가 아닐까 하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책의 가장 마지막에 수록되어 있다 보니 그러한 당돌함이 더욱 더 두드러진다. (따지고 보면 이건 작가의 잘못이 아니라 편집부의 책임이겠지만) 언젠가 좀 더 납득이 가는 형태로 다시 읽고 싶어지는 스토리이다.

※본 리뷰는 환상문학웹진 '거울'에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by 잠본이 | 2009/05/29 23:06 | 대영도서관 | 트랙백(1) | 핑백(1)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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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Jeimian in O.. at 2009/05/31 19:39

제목 : 유,로봇 (U,ROBOT)
유,로봇(U,ROBOT) 한국SF단편이 10편이나 실린다고 해서, 감동의 ‘우주류’와 ‘달과 육백만 달러’ 곽재식의 단편이 실린다고 해서 두근두근 하는 마음으로 거금 11,000원이나 주고 샀는데 생각보다 별로여서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네요. 어디가 SF인지 모르겠는 단편도 많고. 정말 맘에드는 단편은 ‘다섯 번째 감각’ 단 하나 뿐. U,ROBOT – 너무 흔한 내용이라 재미없음. 박시은 특급 – 곽재식은 '달과 육백만 달러'에 나름......more

Linked at U, ROBOT –.. at 2016/11/30 00:43

... 당돌함이 더욱 더 두드러진다. (따지고 보면 이건 작가의 잘못이 아니라 편집부의 책임이겠지만) 언젠가 좀 더 납득이 가는 형태로 다시 읽고 싶어지는 스토리이다. ※원문 작성: 2009-05-29 sf곽재식김주영단편집듀나배명훈한국소설 Previous article Be the first to comment Leave a Reply 응답 취소 Your email ... more

Commented by Jeimian at 2009/05/31 19:41
'우주류' 와 '달과 육백만 달러' 의 작가의 단편이 실린다기에 책을 사기 전부터 기대를 너무 많이 했던게 문제였던거 같습니다. 저는 '다섯 번째 감각' 빼곤 다 재미 없었어요..ㅠ_ㅠ
Commented by 잠본이 at 2009/05/31 21:40
모든 사람을 다 만족시킬만한 내용은 아니었죠.
사실 재미로만 보면 거울 웹진에서 자체발간하는 작품집들 쪽이 훨씬 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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