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본? 성은요?' '그냥 잠본이야. 그를 아는 사람들은 포털 잠본이라고도 부르지만.' '포털... 잠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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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브라운 크리스마스
성탄절이 돌아와서 모두가 웃고 떠들고 즐거워하지만 우리 친구 찰리 브라운만은 대체 무엇이 즐거운 건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찾기 위해 친구들에게 여러 가지로 물어보지만 다들 무슨 선물을 받으면 좋겠다는둥 어떻게 놀거라는둥 본질과는 어긋난 얘기들 뿐. 자기에게 뭔가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싶어진 찰리는 급기야 루시에게 정신과 상담을 받고, 루시는 '축하행사에 참여하면 저절로 의미를 찾게 될 것'이라며 찰리를 억지로 크리스마스 연극 감독 자리에 앉힌다. 하지만 단원들은 감독의 지시에 따라주지 않고 제멋대로 춤추고 노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다. 게다가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찰리가 가져온 트리에 대해서도 불평불만이 쏟아진다. 점점 더 어쩌면 좋을지 알 수 없게 된 찰리는 절망의 늪에 빠지는데, 그런 찰리를 격려하기 위해 라이너스가 들려준 이야기란...?

1965년에 크리스마스 특집방송용으로 제작된 찰스 슐츠 원작의 애니메이션 TV스페셜. 그 이전에도 포드사의 자동차 광고에 피너츠 캐릭터들이 애니메이션으로 잠시 출연한 적은 있었지만 본격적인 스토리를 갖춘 장편에 등장한 것은 이 작품이 처음이다. 6개월도 채 안 되는 단기간 내에 제한된 예산으로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작화나 사운드의 퀄리티는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또한 실감나는 연기를 위해 등장인물들의 목소리를 실제 어린이 성우들이 연기했는데 주역 두어 명을 빼면 모두들 예전에 연기경험이 없거나 너무 나이가 어려서 대사 처리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모든 피너츠 애니메이션에서 반드시 지켜지는 전통이 되었지만 그때 당시만 해도 어른 성우가 어린이 목소리를 내는 데 익숙해져 있던 시청자들에겐 진짜 얼라들의 어눌한 연기가 꽤 낯설게 느껴졌을 것이다)

슐츠의 '피너츠'는 1960년대에 이미 국민적 인기를 구가하는 인기 연재만화로 자라났지만 캐릭터들의 유형이나 작가의 감성이 너무나 독특했던 탓에 원작에 충실한 영상화는 어려울 것으로 여겨졌다. 실제로 당시 제작을 총지휘했던 프로듀서 리 멘델슨과 애니메이션 감독 빌 멜렌데즈는 2차원으로만 존재했던 찰리 브라운과 그 친구들을 자연스럽게 화면 속에 살려내기 위해 여러 가지로 고민했고, 캐릭터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에 대해 많은 아이디어를 내면서 시행착오를 거듭했다. 원작자 슐츠 역시 각본을 직접 쓰는 등 제작과정에 깊이 관여하여 사실상 위 두 사람과 함께 3인 프로듀서 체제로 작품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원작에서 빈번하게 등장했던 스누피의 독백을 삭제하고 대신 판토마임과 기묘한 울음소리(멜렌데즈 감독 본인이 냈다고 함)로 시청각적인 매력을 증폭시킨 것이나, 빈스 과랄디의 나른하면서도 흥겨운 재즈음악을 BGM으로 하여 세련되면서도 천진난만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연출 등등 이후의 시리즈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요소들이 이미 이 작품에서 완성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본 작품은 피너츠 애니메이션 시리즈 전체의 방향을 제시하는 파일럿 필름으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다고 할 만하다. (실제로는 이 작품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이 워낙 좋았기 때문에 방송국이 후속편을 발주하게 된 거니까 시리즈화를 의도하고 만든 건 아니지만 뭐 결과적으로 보면 그게 그거다)

어쨌거나 그렇게 해서 아슬아슬하게 기일 내에 완성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이번에는 방송국인 CBS 측에서 난색을 표했다. 이야기의 템포가 너무 느리고 기존의 성탄절 특집 프로그램과는 여러모로 이질적인 내용이어서 시청률을 제대로 낼 수 있을지 걱정된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클라이막스에서 라이너스가 성탄절의 의미를 설파하기 위해 성경 구절을 인용하는 부분도 논란을 빚었다. 요즘에는 아무도 신경 안 쓰는 문제지만 당시만 해도 거룩한 성경을 신문연재만화 따위(...)의 하급 장르에 인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고루한 인식이 꽤 퍼져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결국 다른 대안이 없었기 때문에 방송은 예정대로 진행되었고, 결과는 예상을 뛰어넘는 대박이었다. 성탄 시즌을 앞두고 12월 초의 프라임타임에 방영된 본 작품의 시청률은 49%에 육박했고, 우수한 방송 프로그램에 주어지는 에미상과 피바디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결국 이 작품은 매년 크리스마스가 돌아오면 어김없이 재방송되는 고전으로 자리잡았고, 20편이 넘는 피너츠 애니메이션이 그 뒤를 이어 제작되었다. 악전고투 끝에 무에서 유를 창조한 제작자들의 노고가 보답을 받은 것이다.

작년 말에 워너홈비디오에서 출시한 코드3 DVD로 감상했는데, 안타깝게도 한글음성을 지원하지 않아서 영어음성+한글자막으로 보아야만 했다. 25분으로 완결되는 소박한 스토리지만 점점 상업주의와 물질주의에 물들어 가는 크리스마스의 세태를 은근하게 꼬집는 장면들이나, 계속 삽질을 거듭하면서도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고 부단히 노력하는 찰리와 그를 바보 취급하면서도 서서히 그가 갈구하는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에 감화되어 감동의 클라이막스를 이끄는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는 지금 와서 봐도 여전히 심금을 울리는 무언가가 있다. 2005년에 발매된 40주년 기념 메이킹 북이나 리마스터링 OST와 함께 즐긴다면 그 감동은 두 배로 불어날 것이다. (문제는 두 아이템 모두 나온지가 한참 지났기 때문에 구입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거지만)

부록으로 본 작품의 제작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관계자들의 증언과 극중 영상을 속도감있게 편집한 2008년작 메이킹 다큐멘터리와, 역시 크리스마스를 제재로 1992년에 제작된 별도의 TV스페셜, 그리고 기타 워너 애니메이션 출시작들의 예고편이 실려 있다. 92년작 성탄 스페셜은 이 작품과 달리 뚜렷한 중심 스토리 없이 당시 원작에서 선보였던 짤막한 성탄관련 에피소드들을 이어붙인 형태로 되어 있기 때문에, 애니메이션 퀄리티나 성우들의 연기는 눈에 띄게 향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소 난잡하고 초점이 맞지 않는 인상을 준다. (중간에 페기 진에게 장갑 사주려고 만화책 파는 에피소드가 뜬금없이 끼어들어가서 원작을 안 본 사람은 '쟤 누구야? 아니 그보다도 빨강머리 소녀는 어떡하고 저런 애한테 목을 매다는 거야?'라는 의아함을 느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작자들 자신조차도 '이게 과연 통할까' 부들부들 떨며 만든 고리짝때 작품보다 충분한 예산과 지원을 받으며 '아주 당연한 듯이' 만들어진 최근 작품이 오히려 더 재미가 없다는 것이 좀 얄궂지만, 세상일이란 원래 예측 불허인 법.

워너에서는 이 작품 말고도 추수감사절, 할로윈, 학생회장 선거 등 여러 가지 이벤트를 다룬 피너츠 TV스페셜을 출시했는데, 일단은 역사적 가치를 생각하여 이 작품 하나만 구입했다. 본편 시작 전에 나오는 광고를 보니 다른 DVD들도 슬슬 사고 싶어지기는 하는데, 워너가 국내 DVD시장에서 철수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재고가 떨어지기 전에 빨리 서둘러야 할 것 같다. (온라인숍에서는 대부분 '일시품절'로 뜨기 때문에 오프라인에서 발품을 파는 편이 더 효과적일 듯)

흥미롭게도 코드3인 주제에 일어음성과 일어자막이 실려 있는데 음성 쪽은 입모양에 맞추고 의미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의역을 가하는 과정에서 대사의 의미가 미묘하게 변한 반면, 자막 쪽은 영어음성에 맞춰 직역되어 있기 때문에 일어음성과 일어자막을 함께 틀어놓고 보면 두 내용이 엇갈리는 부분이 적지 않아서 머리가 약간 어지럽다. (첫머리에서 찰리와 라이너스의 대화를 예로 들자면 영어원판에서는 '난 크리스마스가 뭐가 즐거운지 이해를 못하겠어' '울 누나가 그러는데, 세상 모든 찰리 브라운들 중에서 네가 가장 찰리 브라운스럽대'였던 장면이 일어음성에서는 '선물받고 어쩌고 하는 건 물론 즐겁지만, 도무지 두근거리지가 않아' '누나 말이, 찰리 브라운이란 이름 가진 사람 중에 좀 괴짜가 많다더라'로 되어있다. 전체적인 맥락은 같지만, 잘 보면 느낌이 많이 다르다) 일단은 테스트 삼아서 첫머리만 틀어봤지만 다음에는 일어음성으로 전체를 감상하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 될 것 같다.


ps1. 오프닝 나오기 전에 라이너스와 찰리가 스누피의 장난에 휘말려 날아가는 장면이 있는데, 찰리는 근처 나무에 격돌하지만 라이너스는 어떻게 되었는지 나오지 않는다. 관계자 인터뷰에 따르면 원래 스폰서인 코카콜라의 광고판에 처박히는 장면이 있었다는데, 아무래도 권리 문제나 기타 사정으로 인해 비디오 출시할 때 삭제한 듯.

ps2. 분명히 다들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크고 예쁜 금속제 트리를 사오라고 난리였는데도 불구하고 순전히 자신의 독단으로 초라한 100% 천연 나무 트리를 선택하는 찰리. 앙상하고 힘없는 어린 나무가 자기의 비참한 처지와 비슷하게 느껴져 동정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감독이랍시고 초빙해 놓고 전혀 말을 안 듣는 친구들에 대한 오기가 발동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ps3. 매년 성탄절에 한 번도 자기가 원하는 선물을 받아본 적이 없다는 루시의 푸념을 들은 찰리가 '그럼 네가 받고 싶은 건 뭐냐'고 물으니까 바로 튀어나오는 대답: '부동산' (...................................;;;=_=_b)
by 잠본이 | 2009/03/13 21:56 | OH, GOOD GRIEF! | 트랙백(1)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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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라디오키즈@LifeLog at 2009/03/14 00:28

제목 : 찰리 브라운의 크리스마스..^^
1965년이라.. 내가 태어나기 13년 전인가... 오래되고 또 오래된 작품이구나... -_-;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스누피가 등장하는 찰리 브라운의 예전 작품을 보게 됐다. A Charlie Brown Christmas ... 클래식하지만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아... 이 올드한 분위기...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작품 중 Jazz와 가장 잘 어울리는 작품이 이 찰리 브라운인 것 같다. 작품 전반에 흘러나오는 곡......more

Commented by 페리 at 2009/03/13 23:15
부동산..(....)
Commented by Charlie at 2009/03/13 23:17
사실은 그 나무로 루시를 후려치고 싶어서 샀습니다!
...라고 말했을거예요.. 저라면.. :)
Commented by 을파소 at 2009/03/14 00:17
대세는 부동산(...0
Commented by PKKA Блюда at 2009/03/15 00:12
루시가 나중에 커서 빨간바지 입고 복부인이 되는 거였군요. ;;
Commented by 저공비행사 at 2009/03/19 20:25
마치 오래된 필름을 보듯이 휘리릭 읽으면서 스토리가 지나가는군요. 저는 어렸을땐, 어눌한 말투로 철학적인 말들을 뱉는 라이너스나 말괄량이지만 순수한 패퍼민트 패티가 좋았어요. 그런데 나이가 들고보니 루시가 좋더군요. X-) 아마도 동심에서 확~깨버리는 충격을 준다고할까요 ㅋㅋㅋㅋ 트랙백감사해요. 같이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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