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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언트 로보(실사판) : 히라야마 PD의 회고

실사판, ‘감동의 최종회’에 대한 반성

-히라야마 토오루[平山 亨] (TV드라마『자이언트 로보』메인 프로듀서)


● 요코야마 선생과의 만남
토에이에 입사한 후에도 나잇살이나 먹은 주제에 만화를 무척 좋아했지. 요코야마 선생의 『이가의 카게마루』도 ‘소년 선데이’에서 매주 애독했거든. 이건 지금이니까 하는 얘기지만, 내가 토에이 교토 촬영소에서 조감독 일을 하던 시절에 감독 승진의 오퍼가 왔어. 그때 한 번 해보라고 제의받았던 것이 극장용 영화판 『이가의 카게마루』였지. 언젠가 영화로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읽긴 했지만 설마 내가 그 영화를 제작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네. 주연으로는 당시 잘나가던 배우인 마츠카타 히로키[松方弘樹] 씨가 발탁되었는데, 제법 체격이 듬직한 그 양반을 피아노선으로 매달아서 마치 무중력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요코야마 닌자의 민첩한 액션을 재현할 방법을 도무지 생각해낼 수가 없더군. 그래서 내 능력으로는 못 찍는다고 말하며 거절하고 말았지. 원작만화는 절대적인 인기를 자랑하는 히트작이니 아무리 서투르게 찍어도 손님이 들 거라면서 찍으라는 압력을 받았지만, 나는 요코야마 선생의 『이가의 카게마루』를 사랑하는 독자로서 그 작품을 망칠 수는 없다고 대답해버렸어. 결국 대선배인 오노 노보루[小野登] 감독님이 그 작품을 맡게 되었는데, 개봉했더니 진짜 대박을 쳤다네. 훗날 『가면의 닌자 아카카게』를 제작할 때 요코야마 선생에게 그 얘기를 해 드렸더니 웃으시더구만.

● 『가면의 닌자 아카카게』로 요코야마 원작을 TV화
당시 요코야마 선생과 같은 닌자만화로 인기를 양분하고 있던 작가가 바로 시라토 산페이[白土三平] 씨였어. 시라토 선생의 인기만화 『와타리』가 영화로 만들어지게 되었는데, 그 TV화 기획을 오오사카 덴츠[電通]에서 들고 왔었지. 스폰서인 산요우 전기가 컬러TV의 판촉을 시야에 넣고 기획한 프로그램이었던 셈이야. 그런데 영화 시나리오 작업 단계에서 시라토 선생이 클레임을 제기했는데도 그걸 무시하고 그냥 찍어버리는 바람에, 시사회 자리에서 시라토 선생이 “저따위 건 『와타리』가 아니다. TV화는 물론이고 저 영화의 상영도 허락할 수 없다.”며 분개하는 사건이 터졌어. 선생이 일생 동안 추구했던 ‘해방’의 테마를 몽땅 들어내 버렸기 때문이었지. 그래서 와타나베 요시노리[渡邊亮德] TV부 부장(당시)이 어떻게든 시라토 선생을 달래어 화해하도록 애썼던 게야. 그 덕에 영화의 개봉은 양해를 받았지만 TV화는 불가능하게 되었지. 그래서 차선책으로 떠오른 것이 요코야마 선생의 『히다의 아카카게』를 TV화하는 기획이었어. 이렇게 해서 내가 처음으로 요코야마 선생을 만나뵐 수 있게 되었던 거지.

● 『자이언트 로보』 기획의 발단
TV 여명기에는 토에이 직원들 중에서도 영화보다 TV가 열등하다며 깔보는 풍조가 있었지. 그런 시대에 와타나베 부장과 약간 낙오자 기미가 있었던 나, 이렇게 두 사람이 토에이의 TV작품을 어떻게든 방송국에 팔아보려고 무진 애를 썼다는 말씀이야. 나도 처음에는 TV의 세계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처지였다네. 그런 때에 손을 빌려주었던 사람이 바로 코단샤[講談社]의 우치다 마사루[內田勝] ‘소년매거진’ 편집장이었지. 그리하여 처음으로 어린이용 특촬 TV프로인 『아쿠마 군』의 제작에 나서게 되었던 거라네. 그러니까 일본의 미디어믹스라는 것은 와타나베 씨가 처음 개척했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해.
그 후 TBS에서 『캡틴 울트라』의 방영을 시작했고 그 때부터 토에이 특촬도 그 진가를 서서히 인정받게 되었는데, 나는 이전부터 어떻게든 거대 로봇물을 만들어 보고 싶었어. 이미 토호에는 고지라, 츠부라야 프로덕션에는 울트라맨이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노력해도 그 발뒤꿈치를 따라가기는 어려웠겠지만 말이지. 그러던 어느 날 『아카카게』의 제작에 관하여 의논하려고 요코야마 선생을 찾아갔더니 처음 보는 로봇의 원화가 놓여있더군. “선생님, 이게 뭔가요?”라고 여쭤보니 이번에 ‘소년선데이’에 연재를 시작하는 로봇만화라고 하시더라구. “이거 우리 회사에서 [드라마로] 만들게 해 주십시오.”라고 즉석에서 부탁을 드렸던 거지. 그 당시는 요즘처럼 TV방송국이나 광고대리점이 만화가들에게 그물을 쳐 놓고 뭔가 될 성 싶은 기획이 걸려들면 아직 집필도 시작하지 않은 작품을 미리 계약하는 그런 시스템은 갖춰져 있지 않았다네. 그러니까 내 경우는 상당히 운이 좋았던 셈이지.
그러고 보니 로보의 초기 디자인에서는 가슴에 하켄크로이츠나 철십자 문장이 박혀 있었는데, 그건 본래 나치 잔당이 제조한 병기라는 설정이 있었기 때문이야. 하지만 토에이 동화의 프로듀서였던 시라카와 다이사쿠[白川大作] 씨가 그것을 보고는 “히라야마 씨, 해외에 판매할 경우 이런 디자인으로는 문제가 생길지도 몰라요.”라고 충고해 주었기에 변경한 것이지. 덕분에 비록 전미 방영을 실현하지는 못했지만 『아카카게』에 이어 『로보』도 미국 쪽 케이블 채널에 판매할 수 있었다네.
같은 요코야마 선생 작품인 『철인 28호』는 무기질(無機質)이라는 느낌이 들지. 악당에게 조종기를 빼앗기면 금방 나쁜 로봇이 되고 말아. 선생님의 발상에는 어떤 우수한 과학의 힘이라도 악인의 손에 넘어가면 인류를 위협하게 된다는 테마가 깔려 있었던 셈이지. 하지만 『자이언트 로보』에서는 비록 무기질적인 존재인 로봇이라도, 사람과 함께 생활하다 보면 그 한계를 넘어선 애정이 싹틀 수 있다는 것이 테마였다네. 컴퓨터나 인공지능이 ‘예’나 ‘아니오’를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은 그것이 ‘좋다’ 혹은 ‘싫다’고 판단하여 학습해나갈 수도 있다는 얘기지. 이것은 로보와 소년의 우정 이야기야. 내가 일단 손을 댔다 하면 어떤 소재라도 인정극이 되어버리는 경향이 있는 것 같더군.

● TV영화의 매력을 만끽하다
TV영화는 시간에 쫓겨가며 제작하는 게 대부분이지만 그 당시는 한 편 한 편씩 차근차근 생각해가며 만들었다는 느낌이 들어. 당시 NET(현재의 TV아사히)의 프로듀서였던 미야자키 신이치[宮崎愼一] 씨의 덕택일지도 몰라. 그분은 『아쿠마 군』의 담당 PD였고, 우리들의 기획을 잘 채택해 주었지. 기왕 일을 맡길 바에는 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믿고 일임한다는 자세를 보여주었어. 그런 미야자키 씨나 각본을 맡은 이가미 마사루[伊上勝] 씨, 그리고 나와 토에이 쪽 공동PD였던 츠보이 히사토모[坪井久智] 씨나 그 후임자인 우에다 야스지[植田泰治] 씨 등과 함께 매일 토론을 거듭해가며 제작을 했지.
중반의 에피소드 중에서 움직이지 않게 된 로보의 가슴에 올라탄 다이사쿠 소년이 “로보! 다시 살아나 줘!”라고 목청 높여 소리 지르는 장면이 있잖아? 소년의 눈물이 한 방울 떨어지니까 로보의 내부 메카에 물기가 들어가서 불꽃을 튀기더니 로보가 다시 움직이게 되지. 이건 진짜 감동적이야. 소년의 눈물에 의해 되살아나서 적을 무찌른다. 매주 이렇게 로보와 소년의 이야기를 하나씩 하나씩 벽돌을 쌓듯이 그려나갔지. 한 번에 끝나는 극장용 영화라면 이런 식으로는 만들 수 없으니까, 연속 TV영화라는 것도 꽤 괜찮네~ 하고 진심으로 감탄했어.

● 감동의 최종회 비화
그러니까 『로보』는 시청률만 좋았더라면 정말 좀 더 만들고 싶었어. 하지만 제작비가 너무 많이 들어가는 바람에, 편성국이나 프로듀서 라인을 거치지 않고 토에이 상층부에서 직접 NET 상층부를 상대로 ‘그만 했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전달한 모양이야. 그래서 종료가 결정된 거지. 미야자키 씨도 너무하다며 화를 냈어. 하지만 갑작스레 종료가 결정된 『아쿠마 군』과는 달리 『로보』 때는 각본 구성 단계에서 종료가 결정되었기 때문에 최종회를 최종회다운 스토리로 만들 수가 있었지. 기계인 로봇과 생물인 소년이 교류하는 이야기를 한 걸음 한 걸음 착실히 스텝을 밟아가며 전개해 왔기 때문에 그 최종화가 감동적인 게야. 로보는 자폭하려는 길로틴 제왕을 끌어안고는 다이사쿠가 말리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지구와 소년을 지키기 위해 자기 몸을 희생하려고 우주 저편으로 날아가 버리지.
다이사쿠가 “로보, 돌아와! 내 말이 안 들리니!”라고 울부짖는 장면이 나오지? 그 장면을 실시간으로 본 일본 전국의 아이들도 아마 다이사쿠와 마찬가지로 울었을 게야. 나도 물론 그걸 보며 울었지. 인간을 거역할 리 없는 로보가 다이사쿠의 명령을 어기면서까지 목숨을 바쳐 친구를 지킨다… 그런 시추에이션이 정말 마음에 들었어. 생각해 보면 나중에 『대철인 원세븐』이나 『우주철인 쿄다인』의 최종회에서도 비슷한 짓을 했었지. 나는 전쟁통에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특공대를 동경하는 마음이 있었어. ‘사랑하는 이를 지키기 위해 자기의 값진 목숨을 내던져 죽음을 선택한다’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게 되는 게지. 군국주의라는 비난을 들을지도 모르지만, 우리 세대가 원래 그렇다보니 나도 어쩔 수가 없더라고.
같은 세대인 이가미 씨도 의견을 같이하여 최종회는 특공정신으로 가자고 제의했더니, 우에다 씨 혼자서만 그러면 시청하던 애들이 울음을 터뜨릴 거라며 반대했지. 이제까지 아이들에게 사랑받아 온 로보를 그런 식으로 끝장내는 게 과연 옳은 일이냐면서 말야. 그럼 대체 어떤 결말이 좋겠냐고 물었더니, 비록 만신창이가 되긴 했어도 결국 지구로 돌아와서 사명을 끝낸 로보가 유원지의 놀이기구로 변하여 아이들을 즐겁게 해 주는 라스트로 끝내고 싶다고 하더군. 아이들과 즐겁게 노는 것이 로보의 꿈이라면서 말이지. 그렇지만 나도 이가미 씨도 “엉망진창 만신창이가 된 자이언트로보 따윈 보고 싶지 않아. 꼴사납잖아.”라고 생각해서 우에다 씨 의견은 결국 각하되었지.
그런데 훨씬 나중 얘기지만 당시 프로그램을 시청했다는 어느 여성으로부터 “그 최종회는 어린 마음에 너무나도 가혹해서 지금까지도 트라우마로 남아있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네. 방송이 끝난 뒤에도 로보가 혹시나 돌아오지 않을까 싶어서 상처입고 더러워진 로보의 몸을 닦아주기 위해 걸레를 손에 들고 매일 마당에 나가서 밤하늘을 바라보곤 했다는 게야. 그 말을 듣고 정말로 감동했지. 특공정신이 내 입장에서는 멋있어 보였지만, 그 여성의 입장에서는 전혀 달랐던 거야.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구하기 위해 특공을 하다가 죽어버린다면 뒤에 남은 나 자신도 살아갈 의욕을 잃고 죽어버리지 않을까요.”라는 얘기였지. 그녀는 로보를 그만큼 친근하게 생각하며 아껴주었던 것이라네. 확실히 훌륭한 최종회였지만 로보가 돌아와 주었으면 싶었다는 거지.
그 일이 있고 나서, 나는 우에다 씨에게 사과 편지를 썼다네. “자네가 발안(發案)한 대로의 최종회를 바라는 아이들이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일세. 그는 인간의 상냥한 마음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던 게야. 그런 뜻을 헤아려주지 못했던 우리들은 일백 번 고쳐 죽어도 모자랄 노릇이지.


◆ 히라야마 토오루 : 1929년 3월 19일 도쿄도 출생. 1954년 도쿄대학 문학부 졸업 후, 토에이 주식회사 입사. 토에이 교토촬영소에 배속되어 조감독 수업을 쌓았고, 사토미 코타로[里見浩太郞] 주연의 극장용 영화 『제니가타 헤이지 수사록[錢形平次捕物控]』(1963), 코노에 쥬시로[近衛十四郞] 주연의 『세 명의 로닌[三匹の浪人]』(1964)에서는 감독으로 활약. 1965년 토에이 본사 TV부로 전속된 후 프로듀서로서 『아쿠마 군』(1966)에서 시작된 토에이 아동용 TV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수많은 작품 제작에 관여했음. 메인 프로듀서를 맡은 주요 대표작으로 『캡틴 울트라』(1967), 『갓파 산페이 요괴대작전』(1968~69), 『가면의 닌자 아카카게』(1967~68), 『유도 일직선』(1969~71), 『가면라이더』(1971~73) 및 그 후속 시리즈, 『형사 군』(1971~72), 『인조인간 키카이다』(1972~73), 『초인 바롬-1』(1972), 『힘내라!! 로보콘』(1974~77), 『비밀전대 고렌쟈』(1975~77) 등이 있음. 1990년 토에이에서 퇴직한 후에는 기획집단 ‘미라클 메이커즈’를 결성, 그 대표로서 프로듀스 업무를 계속하고 있음.


-출전: 「자이언트로보 자료편」(히카리 프로덕션 엮음, 코단샤, 2005) pp.136-140
-해석: 잠본이(2009.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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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본이 | 2009/02/22 23:01 | 바벨의 농성 | 트랙백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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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풍신 at 2009/02/22 23:27
그렇죠. 감히 아이들이 사랑하는 캐릭터를 특공으로 날려버리면 그것이야말로 죄! (응?) 아 역시 카미카제의 일본이구나 하는 식으로 이해해버리니...
Commented by EST at 2009/02/23 01:02
초등학교 때 어찌어찌 그 마지막회를 보고, 트라우마까진 아니더라도 상당히 짠한 느낌을 받았고 그 감흥은 여지껏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어렸을 때라 말도 못 알아듣고 오로지 상황만으로 보았기 때문일 것 같은데, 확실히 동시대의 시청자였다면 정말 가슴아팠을 것 같네요. 오래전 작품에 대해 되새기며 당시의 의도 등을 다시금 헤아리는 제작진의 마음도 왠지 애틋하게 느껴집니다.
Commented by 레이트 at 2009/02/23 10:08
정말 님좀 짱인듯. 입니다.....
Commented by 코끼리엘리사 at 2009/02/23 11:04
마지막 이야기 정말 좋네요.
젊은 작가라면 놓치기 쉬운 부분이기도 하고요.
Commented by tentakaize at 2009/02/23 11:09
정말 원작에 대한 이해를 제대로 하시는 분이라, 이시노모리 작품도 이 분이 관여한 것들이 제대로지요.
Commented by draco21 at 2009/02/24 20:22
.... 로보를 로보를... (털썩..) 으앙~~~
Commented by 코넬리우스 at 2009/02/25 15:54
특공 로망 뒤에는 남겨진 자들의 상처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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