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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우 컬렉션 : 날쌘돌이에서 홍길동까지
2007년 7월에 재단법인 부천만화정보센터에서 '한국만화걸작선' 시리즈의 6번째 책으로 묶어서 펴낸 고(故) 신동우 화백의 작품집. 하드커버에 200쪽이 넘는 상당한 두께를 자랑하는 호화본으로, 1950년대부터 1970년대에 걸쳐 작가가 발표한 16편의 작품들을 발췌 수록하였다. (장편 연재물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원고가 현존하는 일부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한정된 부분만 맛보기식으로 수록하고 있는지라, 이 책만 읽어서는 각 작품의 전체적인 모습을 파악하기가 어렵다) 그밖에 신동우 화백의 생전 모습을 담은 사진 한 점, 기획자인 이용철 팀장의 해설, 그리고 간략한 작가 연보를 부록으로 담고 있다. 2만 원이라는 가격이 다소 부담스럽기는 하나 수록된 자료들의 희귀성과 역사적 가치를 생각하면 사실 크게 비싼 편은 아니다.

수록된 작품 대부분이 상당히 오랜 옛날 것들이라 한국만화의 고전적인 문법에 익숙하지 않은 요즘의 젊은 독자들에게는 별로 매력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신동우 화백과 동시대를 살아온 올드팬들을 위한 책인가 하면 또 그렇게 보기도 어려운 것이,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여러 작품의 일부분만을 떼어서 한꺼번에 실어놓은 견본집 비슷한 구조이기 때문에 잠깐씩 들여다보며 추억을 되새길 수는 있어도 온전히 하나의 작품으로 즐기기에는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책은 그러한 세대 구분을 떠나서 신동우 화백의 작품세계를 연구하고자 하는 전문 연구자나 그의 캐릭터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팬들에게 더 절실한 물건이라 하겠다.

이 책을 통하여 <풍운아 홍길동(1968)> 같은 역사활극이나 <진주군과 마미양(1972)> 등의 CF만화 정도를 그린 걸로 알았던 신동우 화백이 의외로 폭넓은 분야에 걸쳐 다양한 작품을 발표해왔음을 알고 놀랐다. 만화체 무협사극(<검호 날쌘돌이(1958)>, <천하장사 꺽정이(1966)>), 극화체 무협사극(<개천대왕 : 가짜왕자와 진짜왕자(1970)>), 밀리터리 명랑만화(<해군 거북선이(1960)>, <순고추장 MP(1965)>), 생활 명랑만화(<심술 100단(1963)>, <빵점이(1963)>), 감동만화(<돌머리와 빵숙이(1966)>, <차돌이의 반장선거(1970)>), 서부만화(<대평원의 승리자 와록크(1961)>), SF만화(<지구함대(1962)>, <킴(1965)>), 위인전기(<안중근(1959)>), 모험 판타지(<스톱이(1965)>) 등등 우리가 전혀 몰랐거나 그냥 스쳐지나갔을 신동우의 여러 세계들이 이 책 안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작품들을 시간 순서대로 차례차례 읽어나가다 보면 같은 장르 내에서도 꽤 다채로운 소재와 표현에 도전했었던 흔적이 느껴지고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점점 변해가는 그림체와 연출 솜씨도 눈에 띄어서 꽤 흥미롭다.

개인적으로 인상깊었던 작품들을 꼽자면 먼저 홍길동의 원형인 동시에 보다 활력이 넘치고 기상천외한 라이벌들이 속출하는 <검호 날쌘돌이>(이때만 해도 주인공 얼굴이 김용환의 코주부 스타일), 미군부대 내에서 빌붙어 살면서도 조선인의 자존심을 잃지 않고 사사건건 충돌하며 미군들을 골탕먹이는 반골 하우스보이의 대활약을 그린 <순고추장 MP>, 이정문 심술개그 사단의 대선배라고 할 수 있는 퉁명스런 주인공의 좌충우돌 스토리 <심술 100단>, 각각 우주함대전과 사이보그 첩보전이라는 서구 SF의 인기 포맷을 빌어와 신동우 특유의 여유만만한 화풍으로 박진감 넘치게 전개해나가는 <지구함대>와 <킴>, 유일하게 성인 남성이 주역으로 활약하는 <천하장사 꺽정이>, 낯선 이국 땅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전개하는 안중근 의사를 찾아서 여행하는 가족의 시점에서 시작하여 안 의사 최후의 의거로 단숨에 이어지는 장엄한 인간극장 <안중근>,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다 현실에 가까운 그림체와 연출에 도전하여 신동우 스타일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개천대왕>이 기억에 남는다.

사나이다운 호방한 기개, 역경에 괴로워하면서도 남을 원망하지 않고 스스로를 다잡는 맑은 마음, 그리고 크게 강펀치를 날리기보다는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식으로 작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분위기를 풀어주는 은근한 유머감각이 도처에서 빛을 발하는 것을 보노라면, 우리 만화계가 상상 이상으로 이 분에게 큰 빚을 졌다는 느낌이 든다. 비록 나라 안팎의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한국 만화의 고유한 흐름은 상당한 변형 · 왜곡 · 상실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지만, 신동우 화백이 물려준 유산이 언젠가 다시 쓸모있는 무언가로 거듭나 새로운 흐름을 일으키는 계기를 만들게 된다면 그것 또한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 책은 단순한 추억거리나 박제된 과거의 파편이라는 의미를 넘어서서, 지금의 한국 만화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되찾아야 할까를 알려주는 하나의 지침이자 방향타라고 감히 말할 수 있으리라.

좋은 책을 빌려주신 gotoh님께 감사드린다.
by 잠본이 | 2008/12/20 00:08 | 만화광시대 | 트랙백(1)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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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Jini's home at 2008/12/20 10:22

제목 : 신동우 컬렉션
©신동우/(재)부천만화정보센터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독자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발표되었던 거장의 작품들을 감상할 때에는 흔히 두가지 감정이 생기게 됩니다. 과연 이름에 걸맞는 모습을 보여주며 재미와 감동은 선사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의외로 이야기로 들었던 것보다 부족한 모습에 실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신동우 컬렉션을 감상하면서 느낀 감정은 두가지 모두였습니다. 풍운아 홍길동이라는 만화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을 비롯하여 수많은 명작들 특히 어린시절......more

Commented by draco21 at 2008/12/20 00:50
국사 학습만화가 생각나네요. 어디있더라. (뒤적뒤적~~)
Commented by rumic71 at 2008/12/20 01:27
만화 한국사는 어시들이 다 한거라서...
Commented by draco21 at 2008/12/20 03:21
아 그렇습니까. ^^: 몰랐던 사실이네요. ^^:
Commented by rumic71 at 2008/12/23 01:32
당시에 길창덕 명의로 나온 한국사 시리즈도 있었어요. 물론 길선생의 평소 그림체와는 전혀 다른 극화풍.
Commented by marlowe at 2008/12/22 08:51
[대평원의 승리자 와록크]는 헐리우드 영화 [Warlock] (1959)를 번안한 듯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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