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박민규
출판사: 문학동네
화자인 한국남자 '나'는 아직 어린 학생이던 1979년 어느날 교실에서 도색잡지를 보다가 선생님에게 걸려서 술만 퍼마시고 주먹을 휘두르는 아버지와 동화에 흔히 나오듯이 냉랭한 계모에게 이 사실이 알려질 것이 두려운 나머지 빌딩 옥상에서 보자기를 두르고 뛰어내린다. 그러나 황당하게도 그 근처를 순찰하던 힘의 왕자 슈퍼맨(-_-)에게 구조되어 미국에 있는 슈퍼특공대의 본부로 옮겨져 영웅들의 온갖 잡심부름을 다 하던 끝에 '바나나맨'이란 칭호를 얻고 세상의 모든것은 미국의 정의에 따라 돌아가는 것이란 놀라운(-_-) 진리를 배운다. 그러나 소련이 붕괴하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 90년대의 어느날, 그는 정신을 잃었다가 마이애미의 한 정신병원에서 다시 발견되고 신원불명자로 찍혀 한국으로 이송되는데...
DC코믹스의 인기 집단 히어로 프로그램인 슈퍼특공대(원제는 SuperFriends)를 재료로 가져와 미국의 안하무인격인 패권주의와 그에 의해 병드는 세상을 환상과 현실을 넘나들며 반어법으로 그려나가는 한편의 블랙코미디이자 풍자소설. 사실 결론 자체는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지만 DC의 각 히어로들(나아가서는 경쟁사인 마블의 헐크까지 특별출연)을 아이콘으로 삼아 미국이 어떤 방식으로 세계를 좌지우지하는지에 대한 시스템을 냉철하고도 폭소가 터질 만한 이야기로 풀어내는게 걸작이다. (슈퍼맨 = 군사력, 배트맨 = 금권, 원더우먼 = 대중문화, 헐크 = 대외용 협박 '나를 화나게 하지 마시오' 기타등등) 그러한 시스템의 추종자이자 하층민 취급을 받으면서도 자기자신은 그런 사실을 모른 채 얼간이처럼 맹종하며 오히려 (도중에 같은 정신병원 수용자로 나오는) 히스패닉계나 아프리카계를 바보로 여기고 미국에 대항하는 남미 게릴라를 '나쁜놈들'로 치부하는 화자의 모습은 사실 미국의 그늘 아래에 살고 있는 우리들 자신(및 우리 위의 세대)이 빠질 수 있는 함정에 다름아니라는 점에서, 읽을 때는 신나지만 역시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뭐 어차피 그러라고 쓴 글이니 뭐라 할 건 아니다;;;)
현재는 영어강사로 활동하며 어렵게 살아가는 화자가 경험한 그 모든 것들(마지막에 그의 앞에 다시 나타난 슈퍼맨을 포함해서)이 단순히 알레고리로 가득찬 환상인지 아니면 실제로 경험한 사실인지는 모호하게 처리되어 있다. 다만 그가 얼치기 해커로서의 실력을 발휘하여 영웅들의 본부인 '정의의 홀' 앞으로 보낸 E메일이 엄하게도 DC코믹스의 비즈니스 서버에 수신되고, 그것을 발견한 고참 크리에이터가 '어떻게 이 녀석이 아직 살아있지?'라고 놀라는 장면만이 어쩌면 환상이 아니거나 혹은 환상이라도 어느정도 현실이 뒤섞여 있을지도 모른다는 짐작을 가능케 한다.
저자는 대학에서 얼떨결에(-_-) 문예창작을 전공한 후 잡지사 편집장 및 사진기자로 일하다가 어느날 때려치고 나와(-_-)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애매한 경력의 늦깎이이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등으로 뒤늦게 호평을 받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글 제목에서 느껴지는 인상과는 달리 그는 자신이 특별히 야구팬이나 만화팬이라 그런 글을 쓰는 것은 아니고,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그런 소재를 택한 것 뿐이라고 한다. 그런만큼 그의 서술은 정확한 정보 조사와 그것들을 엮어내는 통찰 면에서는 탁월하지만, 소재 자체에 대한 어떤 집착(페티시즘)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게 특별히 좋거나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렇다곤 해도 이런 책을 보면서 '둠즈데이가 슈퍼맨을 죽인건 우주가 아니라 메트로폴리스 한복판이었잖아!'라거나 '최초의 흑인 히어로가 스폰이라고? 당신 루크 케이지가 누군지 모르는군!'이라고 쓸데없는 트집을 잡는 잠본이 또한 결국 바나나맨의 슬픈 동족일 뿐인가? (먼산)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장면은 아쿠아맨의 잠수정이 표류하여 멕시코 반군에게 붙잡힌 바나나맨 일행(캐나다인으로 가장했다)이 그 유명한 마르코스 아저씨에게 '농사나 짓고 평화롭게 살면 될걸 왜이러냐'고 하니까 '우리는 농사를 짓기 위해서 총을 잡은 것이다'라는 대답이 돌아오는 장면...
같이 잡힌 브루스 배너가 '제발 부탁이니 날좀 화나게 해줘'라고 해도 '내가 왜?'라고 하며 그들을 친절하게 국경까지 보내주는 마르코스씨...퍼펑
(개그도 정말 이런 개그가 없다...)
ps 이 글을 쓰고 나서 우연히
바나나맨이라는 개그듀오가 일본에 있다는 걸 발견. 이거 설마 싱크로니시티?! -_- (하긴
그아아휠드~도 뭐 한때 나는 바나나맨이야~ 너를 웃겨주러 왔어~ 이러며 주접을 떨긴 했다만 그건 딴 얘기...)
→한없이 서글픈 웃음을 주는 이야기→리듬감있는 문장 구성이 좋다지구영웅전설,
박민규,
그럭저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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