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B: 크리스, 올 여름에 마블 스튜디오가
<아이언 맨>과
<인크레더블 헐크>를 내놓으면서 자기네 캐릭터들이 [만화뿐만 아니라 영화 속에서도] 같은 세계관 속에서 공존한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만화원작 영화의 '크로스오버 전성시대'를 열었어요. DC와 워너도 비슷한 전략을 채용할 모양이던데, 특히나 현재 동결중인 <저스티스 리그> 실사판 프로젝트가 되살아난다면 더더욱 그렇겠죠. 혹시 그점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계신가요? 당신의 고담시는 그런 프로젝트와는 별로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던데요.
-놀란: 우리가 만든 배트맨이나 고담시가 그런 식의 크로스오버에 적합할 거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애초에 스토리를 구상할 때 고민했던 문제 중 하나로 이런 것이 있었죠: 이 세계관에는 만화책이 존재하는가? 이 세계관에는 슈퍼 히어로들이 실제로 존재하는가?
<배트맨 비긴즈>에서 브루스가 자기 자신을 일종의 '상징'으로 재창조할 때 어떤 사상을 품고 있었을까 상상한 결과, 우리는 (비록 영화 속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그 바탕에 깔려 있는 철학을 통해서) '이 세계에는 슈퍼 히어로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입장을 취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만약 그 세계에 슈퍼 히어로들이 [실존인물로서] 존재했다면, 만약 브루스가 슈퍼맨이나 혹은 [그가 출연한] 만화책에 대해서 알고 있었더라면, '상징'으로 거듭나기 위해 가면을 쓰기로 결정한다는 행동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죠. 일종의 패러독스(역설)이자 꼬리에 꼬리를 무는 말장난인 셈이지만, 사실 우리가 그런 입장을 취한 이유는 배트맨이라는 캐릭터의 진짜 원초적인 컨셉으로 회귀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밥 케인의 만화에서] 배트맨이 처음 등장했을 때, 브루스는 외부의 어떤 영향도 없이 순전히 독창적으로 배트맨이라는 '얼굴'을 창조했으니까요.
-GB: 그 말씀인즉 당신의 배트맨이 메트로폴리스의 마천루 사이로 줄을 타고 날아가는 모습을 보기는 힘들 거라는 얘기죠?
-놀란: 네, 맞아요. 두 세계는 전적으로 다른 차원에 속합니다. 전혀 다른 관점에 기반을 두고 있죠. 물론 [크로스오버라는 접근법은] 만화의 세계에서는 매우 성공적으로 실현되었고 영화에서도 못할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취한 방식이 아닙니다. 우리는 <배트맨 비긴즈>를 만들기 위해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했어요.
-GB: 만화와는 다른 접근법을 택한 거군요.
-놀란: 예, 전적으로 다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브루스가 집을 떠나 수련을 쌓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가면을 쓰고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이 완전히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죠. 우리는 그 문제를 순수하게 그 자체로써 다루었습니다: 배트맨이 브루스 웨인에게 갖는 의미는 무엇이며, 브루스는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 걸까? 그는 다른 슈퍼 히어로의 영향을 받지 않았어요. 물론, 관객 여러분은
<다크 나이트>를 통해 우리가 조커를 어떤 식으로 각색할 수 있었는지 이미 보셨겠지만, 조커는 매우 연극적으로 행동합니다. 배트맨이 굉장히 극적인 연출을 통해 고담시에 어떤 본보기를 제시했고, 너도나도 그것을 따라하다보니 조커라는 놈이 나타나게 된 거죠. 하지만 중요한 점은 이 이야기 전체가 배트맨이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해냈다고 가정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는 겁니다. 솔직히 말해서, 그점에 관해서는 원작보다 훨씬 멀리 나갔죠. 브루스가 어린 시절에
쾌걸 조로의 팬이었다는 설정이 대체 언제부터 나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원작에서는 상당히 오래 전부터 그런 설정이 당연한 것처럼 자리잡고 있었잖아요.
-GB: 프랭크 밀러가 1986년에 그린
<다크 나이트 리턴즈>에서 조로영화 상영 현수막이 나왔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놀란: 그보다 훨씬 전에도 있었을 겁니다. 거의 확실해요. 다음에 [DC코믹스 회장인] 폴 레비츠를 만나면 한번 물어봐야겠군요. 하지만 어쨌든 간에 우리는 그 설정을 변경했습니다. 우리는 어린 브루스가 조로 영화를 보러 가는 장면은 의도적으로 피했어요. 영화 속 인물이 영화를 본다는 것은 만화책 캐릭터가 영화를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잘못하면 해체주의적인 함정에 빠질 수 있는데 그것만은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죠. 그게 조로를 생략한 가장 큰 이유입니다. 하지만 또 다른 이유로는, 조로가 일종의 역할 모델로서 브루스에게 영향을 주는 상황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브루스가 누구의 영향도 받지 않고 순전히 혼자서 그 미친 가면놀이를 생각해낸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싶었는데 조로의 존재는 자칫하면 초점을 흐리게 할 수 있었거든요. 그 때문에 우리 나름대로의 신선한 접근법이 필요했죠. 그래서 조로를 생략하는 대신 동굴 속의 박쥐들을 강조함으로써 박쥐와 연관된 공포와 상징성을 확고하게 부각시켰죠.
-GB: 브루스가 부모와 함께 오페라 하우스에 가서
<박쥐>*를 관람한 것도 그 때문이로군요. 덕분에 영화 자체도 마치 오페라와 같은 격조를 띠게 되었네요.
{* - 요한 스트라우스 2세가 1874년에 발표한 독일 오페라 작품. 다만 <비긴즈>에서 실제로 나왔던 오페라는 이 작품이 아니라 이탈리아 작곡가 아리조 보이토의 1868년작인 <메피스토펠레>라는 것이 정설이다. 아무래도 인터뷰어가 착각한 듯.}-놀란: 바로 그겁니다. 그렇게 한 덕분에 극중의 사건들이 어느 정도 영화적인 설득력을 갖게 된 거죠.
Original Text (C) Geoff Boucher / LA Times
Translated by ZAMBONY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