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본? 성은요?' '그냥 잠본이야. 그를 아는 사람들은 포털 잠본이라고도 부르지만.' '포털... 잠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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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 7호
초등학생인 샤오디는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건설노동자인 아버지와 함께 다 쓰러져가는 폐가에서 어렵게 살아간다. 샤오디의 아버지는 아들을 좋은 사립학교에 보내기 위해 뼈빠지게 일하지만 형편은 별로 나아지지 않고 샤오디는 학교에서 부잣집 아이들이나 속물 교사로부터 왕따를 당한다. 급우가 가져온 장난감 로봇견 '장강 1호'를 부러워하던 샤오디는 아버지에게 같은 장난감을 사달라고 떼를 쓰지만 가난한 아버지에게 그런 돈이 있을 리가 없다. 샤오디의 아버지는 쓸만한 고물을 건지러 쓰레기장에 갔다가 정체모를 녹색 공을 주워 장난감 대신 아들에게 선물한다. 그날 밤 문제의 공은 외계에서 온 털복숭이 생물로 변하고 샤오디는 그 생물에게 '장강 7호'라는 이름을 지어준 뒤 애완동물처럼 정성껏 기르기 시작한다. 그날 이후, 두 부자의 삶에는 미미하지만 전과는 약간씩 다른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는데...

-이 영화는 기존의 주성치 영화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꽤 당혹감을 느낄 만한 작품이다. 가난한 서민들의 해학과 애수가 공존하는 삶, 어떤 일이 있어도 순수함을 잃지 않는 주인공, 클라이막스를 장식하는 아주 특별한 기적 등 이전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기본요소는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좀더 절제되고 얌전한 연출로 '사소하지만 소중한 일상 풍경'을 보여주는 데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에는 주인공으로서 극 전체를 지배하는 위력을 과시하던 주성치 본인은 관찰자에 가까운 위치로 물러앉고 실질적인 주역은 샤오디 역의 서교가 전담하여 생동감 넘치는 연기를 보여준다.

-비록 UFO와 외계생물이 나오는 SF의 형식을 빌어오긴 했지만 극의 무게중심은 어디까지나 샤오디와 아버지 사이의 미운정 고운정 다 얽힌 가족관계와 그를 통한 샤오디의 내면적 성장에 놓여 있다. 초인적인 쿵후 액션이나 신기한 도구를 사용한 슬랩스틱 개그 등 기존의 주성치 영화를 연상케 하는 부분도 나오긴 하지만 여기서는 극 전체의 흐름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꿈 장면이나 애들 싸움 등에 한정적으로 사용되는 양념에 불과하다(그리고 무엇보다도 주성치 본인은 액션을 전혀 하지 않고 오히려 그 반대로 엄청나게 평범한 아저씨로 나온다). 그 때문에 <소림축구>나 <쿵푸허슬>에서 보여준 통쾌무비 & 황당무계의 미학을 기대하고 극장을 찾은 관객이라면 실망하기 딱 좋다. 오히려 이 영화의 지향점은 비토리오 데 시카의 <자전거 도둑>과 스필버그의 < E.T. >를 합체시킨 사회파 가족 환상영화(?)에 가깝다. (샤오디 부자가 겪는 고생은 <자전거 도둑>에 비하면 새발의 피이긴 하지만...)

-이야기를 이끄는 핵심인물인 샤오디의 성격은 아주 어린이다우면서도 한마디로 요약할 수 없는 복잡함으로 가득하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고 어렵게 살아서 그런지 순진해서 잘 속아넘어가는 아버지를 한심하게 여기는 조숙함도 보여주지만, 신기한 장난감을 갖고 유세하는 급우들이 부러운 나머지 백화점에서 아버지를 붙잡고 떼를 쓰기도 한다. 장강 7호가 처음 나타났을 때는 귀신인줄 알고 무서워하다가도 그 정체를 알고 나자 해맑게 웃으며 같이 노는 순박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자기의 지나친 상상력으로 인한 개꿈을 그대로 믿은 나머지 장강 7호에게 초능력을 발휘하여 자기를 도와달라고 억지를 쓰다가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힘없는 외계 멍멍이에게 물고문을 가하고 쓰레기통에 처박는 등 제멋대로이고 잔인한 성격도 은연중에 드러낸다.

-가난해도 항상 떳떳하고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척 하지만 속으로는 다른 집 아이들을 부러워하며 한탄하다가 결국 아버지에게 반항심을 터뜨리는 때이른 사춘기(?)를 맞이하고, 큰 덩치와 못생긴 얼굴 때문에 놀림받는 거구의 소녀 매기를 도와주지만 정작 매기 본인이 호감을 표시할 때는 은근슬쩍 난처함과 거부감을 표정으로 나타내는 명장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너무 동화스럽게 착하지도 않고 너무 막장스럽게 비뚤어지지도 않은, 매우 현실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관객들과 별다를 것이 없는 평범하면서도 다면적인 인간 그 자체인 것이다. 이야기 자체는 매우 단순하고 때로는 비약이 심한 곳도 있지만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주인공의 성격과 그 성격을 100% 형상화시킨 배우의 연기력 덕택이다. 클라이막스에서 샤오디와 아버지가 새삼스럽게 부자간의 정을 확인하는 장면이 자칫 진부해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감동적으로 다가왔던 것 또한 주인공이 평범하면서도 인간적인 인물로 잘 형상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풀CG를 사용하여 풍부한 표정과 앙증맞은 연기로 주인공과 관객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우주생물 '장강7호'는 이 작품 내에서 다소 미묘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지구에 떨어진 외계인과의 교류를 그리는 점에서는 < E.T. >와 비슷하게 느껴지지만 그 영화에서는 ET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특히 후반부는 ET를 둘러싼 아이들과 어른들의 갈등이 핵심인 데 비해 장강7호는 결코 극의 중심을 차지하지 않는다. 이녀석이 나타났다고 해서 샤오디의 생활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거나 우주적인 대사건이 벌어지는 것도 아니고 갖고 있는 능력도 한정적이어서 그다지 큰 역할은 하지 못한다. 고장난 선풍기를 고쳐주어 시원한 밤을 보내게 해준다던가 샤오디가 다른 애들과 친해지는 계기를 (본의 아니게) 만들어 준다던가 하는 세세한 역할이 있기는 하지만 극을 이끌어가는 것은 여전히 샤오디이며 그의 현실은 장강7호가 나타난 뒤에도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한 사실은 샤오디의 꿈 장면과 곧이어 벌어지는 현실의 대조를 보면 아주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구성은 스토리에 상당한 현실감을 부여하기도 한다)

-클라이막스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극의 방향에 영향을 미치는 최후의 기적(그게 뭔지 자세히 쓰면 천기누설이 되니 생략)을 일으키기는 하지만 그 사실을 아는 것은 관객들뿐이고 극중 인물들은 장강7호가 무슨 일을 했는지 완전히 모른 채로 넘어가며 문제의 기적에 대해서도 '좀 이상하긴 하지만 뭐 그럴수도 있지'라는 식으로 술렁술렁 넘어가서 좀 힘이 빠질 정도다(애초에 샤오디 이외의 인물들은 장강7호 자체에 대해서도 '잘 만들어진 장난감' 정도로 인식하고 별로 놀라워하지도 않으니 굴욕도 이런 굴욕이 없다).

-결국 장강7호의 역할은 주인공인 샤오디가 주변 환경에 잘 적응하면서 스스로를 계발하고, 사이가 벌어질 뻔 했던 아버지와도 좋은 관계를 회복해나가는 것을 보조하는 일종의 촉매 역할에 가깝다. 샤오디에게 엄청난 존재라는 오해를 받지만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하여 실망을 안겨주고, 그 때문에 화난 샤오디나 주위의 개념없는 인간들로부터 핍박과 갖은 신체적 학대를 받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편단심으로 샤오디를 생각하며 스스로의 생명까지 내던질 정도로 헌신하는 장강7호는 완벽한 애완견이자 이상적인 동반자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샤오디의 곁에 있어줄 수 없는 것을 늘 미안하게 여긴 아버지의 사랑이 실체화된 일종의 대리인이라고 봐도 좋지 않을까? (실제로 어떤 평론에 따르면 아무런 특기도 없이 무기력한 아버지로서 뒤로 한발짝 물러난 주성치가 자기 대신 주역을 보좌하기 위해 배치한 페르소나라는 해석도 가능한 모양이다)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개성이 강하고 저마다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지만, 사실 근본적으로 나쁜 사람은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도 이 영화의 특징이다. 잘난척하는 부잣집 아들놈은 장강7호를 둘러싼 한바탕 소동 끝에 샤오디와 화해하고, 속물 교사는 샤오디가 노력하여 좋은 성적을 거두자 진심으로 칭찬해주며, 부잣집 아들놈의 똘마니 노릇을 하며 샤오디를 괴롭히던 조폭계 남학생도 매기의 괴력에 반하여 순한 양이 되고, 매일 샤오디 아버지를 윽박지르며 험한 말을 퍼붓는 공사감독은 사실 인정많고 의리있는 사나이였다는 식이다. 오히려 이 영화에서 절대악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가난과 그에 대한 사회적 편견, 언제 어디서 우리에게 닥쳐올지 모르는 안전사고, 그리고 그러한 것들 때문에 생기는 절망과 불안 등등 매우 추상적인 요소들이다. 고정된 실체가 없기 때문에 한방에 끝낼 수도 없고 늘 생활의 일부로써 달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절대악으로 상징되는 구체적인 고난을 타개하는 카타르시스가 없다는 점에서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일상의 어려움을 통해 가족애를 회복하고 정신적으로 약간이나마 성숙한 주인공이 변함없는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끝을 맺는다는 점에서는 이전의 작품들보다 훨씬 성숙한 경향을 보여준다. [샤오디의 간절한 마음에 응답하여 다시 나타난 UFO가 무수한 장강7호의 동족들을 쏟아놓고 날아가버리는 경악의] 라스트신은 그러한 잔잔한 마무리에 방점을 찍는 감독의 장난기 어린 몸짓이라 봐도 좋지 않을까.
by 잠본이 | 2008/10/19 00:48 | 시네마진국 | 트랙백(7)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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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로오나 at 2008/10/19 05:47
가장 멋진 점은 샤오디도, 부잣집 아들놈도 다 여자라는 거죠. 두 아이 다 여자아이들이 연기했답니다.(...)
Commented by 닥슈나이더 at 2008/10/19 12:39
저도 이게 충격..
Commented by greendiaM at 2008/10/19 11:20
역시 주성치 하면 여자주인공이 누굴까?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이번엔 파트너가 없나보군요?
Commented by 배트맨 at 2008/10/19 11:26
대체적으로는 주성치 팬들이 실망을 많이 표시하는 것 같던데, 잠본이님께서는 좀 다른 관점으로 보신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
(저는 딱히 주성치의 팬은 아니라서 관람하지는 않았습니다.)
Commented by iknasmik at 2008/10/19 16:34
두아이뿐아니라 아이역의 남녀 성별이 모두 바뀌어 있죠
Commented by ckatto at 2008/10/19 22:05
차분하게 봤으면 그럭저럭 괜찮게 봤을지도 모르겠네요.

예고편 낚시는 지금 생각해도 심한것 같습니다. 하루이틀도 아니지만.
Commented by 코끼리엘리사 at 2008/10/20 16:53
전 주성치 영화인줄도 모르고 봤다가 정말 재미있게 봤습니다.
개인적으로 최근 중국의 어린이들에게서 기대되어지는 가치라던가
'말이 많아진' 다른 선진국들에서는 보기 힘들어진 연출의 차이를
볼 수 있었다는 부분에서도 재미있었고요.

그나저나 확실히 라스트는 '침공'이라고 밖에…
Commented by 우노히카 at 2008/10/22 19:03
와 좋은 글 읽고갑니다 ^^ 트랙백 걸어놓고 갈께요.
굉장히 재미있는 관점이네요 ~~
Commented by punctual at 2008/10/23 18:53
뻘쭘한 라스트가...그만의 영화색이라는....생각을 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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