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본? 성은요?' '그냥 잠본이야. 그를 아는 사람들은 포털 잠본이라고도 부르지만.' '포털... 잠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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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개아텀
-세기상사에서 1971년에 제작한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 제목만 보면 무슨 '철완 아톰' 짝퉁인가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작품이나 주인공의 디자인은 아톰과는 전혀 상관없고 단지 '일당백의 초능력을 지닌 소년이 막강한 적과 육박전을 벌인다'는 컨셉만이 같을 뿐이다. 이럴 바에야 그냥 다른 이름 붙여서 확실하게 구분되는 오리지널 캐릭터임을 어필하는 편이 좋았겠지만 아무래도 당시 상황을 생각해보면 국내TV등을 통해 소개되기 시작한 아톰의 인기에 편승하기 위해 일부러 저렇게 작명했을 가능성도 있는 듯하다. 세기상사는 <우주괴인 왕마귀> 같은 실사 SF물 제작에서도 활약했던 걸 생각해보면 의외로 다방면에 재주가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오늘날까지 살아남아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계속 머물렀더라면 토에이에 버금가는 대기업이 되었을지도? (아닐지도)

-대강의 줄거리는 머나먼(로켓으로 몇시간만에 가는 걸 보면 별로 먼 것 같지도 않지만) 오로라성의 왕자 아텀이 지저제국 황제 게르만의 침략으로 나라를 잃고 자기도 붙잡혀서 초능력을 빼앗긴 채 사형당하러 우주로 호송되던 차에 지구별의 개초딩 꾀돌이가 장난으로 몰고 나온 로켓과 교통사고를 일으켜(분명 정면충돌로 양쪽 둘다 박살이 났는데 타고 있던 놈들은 멀쩡하게 지구 위에 떨어져 있으니 거참) 위기를 모면하고 지구인들의 도움을 받아 초능력을 되찾은 뒤에 게르만 황제의 야망을 저지하고 포로로 붙들린 어머니를 구출하려고 우주로 떠난다는 것이다. 메인 주인공은 진지하고 침착하며 정의로운 아텀이지만 옆에서 계속 알짱거리며 기상천외한 장난을 치다가 결과적으로 적을 혼란시키고 일행을 돕게 되는 말썽꾸러기 꾀돌이 또한 무시 못할 비중을 차지한다. (이러한 더블 주인공 배치는 1968년에 같은 세기상사에서 제작한 <황금철인>과 유사한 것으로, 여기의 소년 주인공 또한 이름이 '꾀돌이'이며 메인 주인공 못지않은 호쾌번쩍한 액션을 보여준 바 있다. 오히려 액션의 과격함 면에서는 <황금철인> 쪽 꾀돌이가 훨씬 압도적이다. 빨간 잠옷 차림으로 기관포대를 난사하는 초딩 캐릭터가 도대체 세상 어디에 또 있겠나?)

-기타 조연으로 중요한 발명품을 조달하는 꾀돌이네 할아버지 양박사, 명목상 헤로인의 포지션이지만 중간에 세뇌당하여 채찍 여왕님이 되어버리는 꾀돌이네 누나 영희, 미청년에 격투실력도 상당한 공돌이의 희망 박기사, 양박사의 제자인 최박사와 이박사 등등이 등장하나, 중반 이후로 갈수록 아텀과 꾀돌이의 포스에 밀려 점점 인상이 희미해진다. (특히나 최박사는 처음 등장할 때 인상이 좀 더럽다 싶었더니 초반에는 적이 보낸 스파이와 바꿔치기당하여 양박사를 몰래 방해하고, 중반에는 진짜가 다시 나타나지만 적에게 세뇌당한 탓에 양박사를 마구 후려치고, 종반에 세뇌가 풀려 해피엔딩인가 싶었더니 게르만의 공격으로부터 꾀돌이를 감싸다가 맞아죽는 비참한 역할을 자청한다. 게다가 마지막 유언이랍시고 하는게 '할아버지 말씀 잘 듣고 훌륭한 사람 되어 잘 살아라'라는 도덕 교과서 수준의 메시지라 뒤로 넘어가는 줄 알았다. 유언은 당신 가족에게 해야지 왜 남의 손자 걱정부터 하냐고! OTL) 오히려 어떻게 보면 꾀돌이와 함께 나와서 톰과 제리 수준의 슬랩스틱 개그를 보여주는 뚱뚱보 유모 아줌마가 훨씬 인상적인 캐릭터다. (크레딧에 김영옥씨 이름이 있는데 아무래도 유모 목소리가 이분인 듯)

-전투장면에서는 로켓, 원반형 우주선, 유도탄, 광선총, 원자어뢰, 거대로봇 등등 당시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첨단병기가 몰려나와 비교적 박진감 있는 전투를 펼친다. 아텀이 주도하는 시리어스+호쾌 스타일의 파괴전과 꾀돌이가 주도하는 슬랩스틱+얼렁뚱땅 스타일의 첩보전이라는 2가지 형태의 전투가 번갈아 펼쳐지는 것도 인상적이다. 또한 만화적인 효과를 최대한 살린 장면도 많아서, 아군과 적의 유도탄이 갑자기 의인화된 형태로 데포르메되어 서로 티격태격 싸우다가 둘다 폭발한다거나, 적의 무인병기에서 튀어나온 화살표 형태의 탄환이 아텀에게 저지당하자 역시 의인화된 형태로 변해서 낑낑거리며 기를 쓰다가 결국 아텀이 꽁무니에 불을 붙여서 폭파당한다거나 하는 코믹스런 장면도 나온다. 폭발 장면에서도 작은 불꽃과 함께 한글로 된 '펑' '꽝' 등의 의성어가 글자로 잠깐씩 튀어나오며, 대폭발의 경우는 아예 한 컷 전체를 폭발 효과와 함께 'CRASH!' 'POUF!'같은 영어 의성어로 가득 채우는 등 미국 카툰의 영향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 적지 않다. 분명 꾀돌이가 로켓을 몰고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배경그림의 연구소 한편에 로켓이 떡하니 서있다던가 우주로 떠나던 최박사의 옷이 잠깐동안 다른 걸로 바뀐다던가 하는 작화 실수가 몇 군데 보이긴 하지만 그정도야 뭐 애교로 넘어갈 수준이다.

-전체적인 작화 스타일은 전작 <황금철인>과 마찬가지로 미국 카툰의 둥글둥글 3등신 그림체와 일본 만화의 뾰족뾰족한 이목구비가 어우러져 요즘은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기묘한 그림체를 이루고 있다. 60년대의 TCJ(훗날의 에이켄) 그림체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소년이고 중년이고 노년이고 속눈썹들은 왜 저리 긴지...) 그러나 <황금철인>이 사실상 피터팬스러운 명작동화 스타일의 꿈나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판타지인 데 비해 이 작품에서는 명확히 지구와 우주의 다른 행성을 배경으로 한 SF적 색채를 강화한 흔적이 보인다. (대기권 돌입시의 마찰열이나 관성의 작용 등에 대한 고증이 전혀 보이지 않는 헐렁헐렁한 세계관이긴 하지만 뭐 어쨌든) 세기상사가 경영이 잘 되어서 <황금철인 대 번개아텀> 같은 크로스오버라도 내줬더라면 진짜 웃겼겠지만 현실은 그렇게 매끄럽게만 돌아가지는 않는 법이다.

-한국영상자료원의 상영 이벤트에서 감상하였는데 근 30여년 전 물건인 것을 감안하면 필름 보존 상태나 사운드트랙의 음질은 꽤 양호한 편이다. 다만 단순 사고인지 아니면 진짜로 유실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중반부에 꾀돌이와 유모가 오로라성에서 미아가 되어 지저인들에게 추적당하는 슬랩스틱 장면에서 한 3분 정도 소리가 안 나온다. 전투장면은 한 두 군데를 빼면 대부분 음악 없이 웅웅거리는 배경음과 함께 아텀이 '이얏! 타압!'이라는 기합만 쉴새없이 내지르는 식으로 음향연출이 되어 있는데, 적절히 음악을 삽입하여 감정을 고조시키는 편이 좀더 덜 지루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이건 어디까지나 퀄리티가 아니라 연출의 문제이긴 하지만) 전체적인 연출은 물론이고 배우들의 대사 처리도 아주 느릿느릿하게 되어 있어서 빠른 것에 익숙한 요즘 관객이 보면 참을 수 없는 탈력감을 느낄 위험도 있으니 반복 감상은 절대 무리다. (특히나 양박사의 경우는 '그래...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하는 식으로 대사 처리가 꽤 답답한 부분이 많아서, 전문 연기자가 한 게 맞나 싶을 정도다)

-지저인들은 녹색 피부에 쥐도 생으로 잡아먹는 파충류계 악당(미국 TV드라마 'V'보다 한 20년쯤 앞섰다!)으로 묘사되어 있으나 게르만 총통과 그에게 항상 꿀밤을 맞는 시종을 제외하면 다들 똑같은 얼굴이라 별 개성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아텀의 동족인 오로라성 지상인들은 거의 등장하지 않으며, 왕후(일부 장면에서는 '왕비')가 잡혀가는 장면에 잠깐 나왔다가 나중에 왕후가 탈출하여 반격할 때 다시 나오는 V자 마크 그려진 유니폼(나중에 슈퍼태권브이 등에서 지겹게 재활용되는) 입은 청년 몇 명 정도밖에 없다. (왕후는 감격스런 얼굴로 '오로라성에 다시 평화가 돌아왔어요'라고 중얼거리지만 일반 백성들이 전혀 나오지 않다 보니 '저건 아무리 봐도 지상이고 지저고 다 깡그리 망한걸로밖에 안보이는데?'라고 딴지를 걸고 싶어진다) 양박사 연구소나 주변 레이다 기지에 근무하는 군인(혹은 경비원)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양박사 일당이 우주로 날아갈 때는 전투원이라고 할 만한 인물이 한 명도 동행하지 않는 것도 좀 미스터리다. (이미 자기들이 너무나 잘 싸운다고 확신했기 때문에 추가인원이 필요없었던건지 아니면 그냥 군이 싫었던건지;;;) 분명 우주의 다른 행성이며 외눈박이족이나 괴룡이나 분홍 코끼리(...)가 우글거리는 별천지로 묘사된 오로라성에 지구의 것과 별 차이 없는 어류와 곰탱이(...)가 돌아다닌다는 것도 좀 어색하다.

-메인 주인공인 아텀은 비행능력, 완력, 손바닥 광선, 기타등등의 초능력을 발휘하여 자기 몇 배 크기의 파괴병기를 상대로 싸우는 먼치킨급 괴물이지만 너무나 정직하고 성실한 성격이라 꾀돌이처럼 통통 튀는 인간적 매력은 없다. (애초에 인간적인 생활묘사가 전혀 없는데다 대화 장면보다는 전투 장면에서 주도권을 잡고 활약하기 때문에 평소엔 얌전히 찌그러져 있다가 다른 인물들의 곤경을 구해주는 데만 동원되는 필살병기에 더 가깝다) 등에 매달고 있는 망토는 여러 히어로 선배들과 마찬가지로 공기가 없는 우주공간에서도 끊임없이 펄럭일 뿐만 아니라(...) 광선총을 막아내는 방호막으로도 사용 가능하다. 클라이막스에서는 기계인간의 정체를 드러낸 게르만 황제를 상대로 오로라성 전체를 무대로 한 대결전을 벌인다. 처음부터 끝까지 두 눈과 얼굴 아랫부분을 제외한 머리 전체를 비행사같기도 하고 라이더같기도 한 두건으로 가리고 있는데, 어머니와 재회할 때 '얼굴 한 번 보자'면서도 그걸 벗기려고 하지 않는 걸 보면 아무래도 그게 두건이 아니라 얼굴 피부의 일부분일지도 모르겠다(...). 아텀의 어머니인 왕후는 전반적으로는 디즈니계 동화의 전형적인 왕비 스타일을 하고 있으나 묘하게도 옆머리카락을 암모나이트나 베이글을 연상시키는 구불구불한 형태로 꼬아놓고 있다. (<스타워즈>의 레이어 공주가 등장하려면 아직 8년이나 남았을텐데 이건 대체?;;;)

-필사적으로 아텀의 초능력을 되돌리려고 연구하는 양박사. 그러나 '이글 아이'에 맞먹는 정보력(...)으로 그들의 동향을 파악한 악당 게르만은 '5시간내에 아텀 내놓으셈'이란 최후통첩을 보낸다. 그런데 다음 장면에선 양박사가 제자들과 아주 태평스럽게 '이제 24시간만 더 하면 완성'이라는 소릴 늘어놓고 있다. 몇 장면 뒤에는 게르만이 다시 전갈을 보내 '당장 내놓으셈'이라고 하자 양박사가 24시간만 더 달라고 부탁하고 그것을 들은 게르만은 다시 '3시간만 기다려주겠삼'이라고 답한다. 이자식들 시간관념이 더이상 어쩔 수 없을 정도로 엉망진창이잖아! OTL

-초반 수색장면에서 나온 용도불명의 비행기(그냥 한두장면 나오고 끝)나 꾀돌이가 오로라산 곰탱이를 혼란시키기 위해 사용한 트랜지스터 라디오에는 자랑스럽게도 ROK의 세 글자가 딱 새겨져 있다. 아아 역시 위대한 대한민국! (믿는 사람 양박사)

ps. 소림사십대제자님 블로그에 당시 신문광고 스캔이 올라와 있는게 광고문구가 참 구수하다. OTL
by 잠본이 | 2008/09/28 16:26 | ANI-BODY | 트랙백 | 핑백(1)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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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오토군 at 2008/09/28 17:37
분홍코끼리(…) 설마 술먹은 초딩의 꿈이라거나요.(…)
Commented by 잠본이 at 2008/09/28 18:02
사실은 황금철인과 번개아텀 모두 술먹은 꾀돌이의 꿈! (그리고 제작되지 못한 제3부에서 드디어 현실로...<웃기지마>)
Commented by rumic71 at 2008/09/28 17:41
그나마 포스터에는 오챠노미즈 박사가 그려져 있었죠.
Commented by 잠본이 at 2008/09/28 17:48
그 포스터는 같은 감독이 만든 '돌아온 번개아<톰>'입니다.
http://img.blog.yahoo.co.kr/ybi/1/6c/43/anicapsule/folder/6/img_6_6325_120?1159517419.jpg
이건 또 무슨 내용인지 되게 보고 싶어지는군요 OTL
Commented by 하얀앙마 at 2008/09/28 19:28
히게오야지도 있군요...
Commented by marlowe at 2008/09/28 17:59
츠억을 되살리는 의미에서 보려다가 귀찮아서 포기했어요.
액션에만 나오는 타이틀롤이라는 점에서 [전자인간 337]이 떠오르네요.
Commented by 잠본이 at 2008/09/28 18:02
아무래도 저 꾀돌이가 퇴화된 패턴이 태권부이의 깡통 철이가 아닌가 싶습니다(...)
Commented by tomstrong at 2008/09/29 01:54
제가 최초로 극장에서 본 애니메이션이네요. 저는 세기 극장이 아니라 광화문의 국제 국장에서 봤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극장이지요.
Commented by 잠본이 at 2008/09/29 21:21
제작사가 세기상사이고 극장 얘기는 따로 없었는데요(;;;)
Commented by dennis at 2008/09/29 11:28
읽다보니 이거 국민학교 다닐때 단체관람(?)가서 본거같은 기억이...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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