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본? 성은요?' '그냥 잠본이야. 그를 아는 사람들은 포털 잠본이라고도 부르지만.' '포털... 잠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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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모프 씨, 농담도 잘하시네 #14
나는 전에 <역사가의 세계사> 중에서 이슬람 치하에 있던 스페인에서 가장 위대한 왕으로 50년에 걸쳐 깨끗한 정치와 번영을 이루었던 압둘 라하만 3세가 그 긴 시간 중에서 행복했던 날은 단 14일밖에 없었다고 고백하는 이야기를 읽었던 것 같다. 이 말은 인간의 상태에 관한 경악할 만한 논평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잊지 않고 있었다.
팀과 웬디와 식사를 하기 몇 주인가 전에 팀의 백부인 조지 셀디스가 편집을 한 문고판의 인용구 사전을 샀다. 나는 인용구 사전에 빠져 있어서 보기만 하면 사고 싶어졌다. 그러나, 이 책은 말이 많고 기억할 가치가 없는 산문조의 문장으로 가득차 있었기 때문에 산 뒤에는 던져버렸다.
그런데 그 책의 '행복'이라는 항목 중에 압둘 라하만 3세의 인용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이런 문장이었다. '나는 번영과 권력이 절정기에 달한 50년 동안 정치를 해서 친구들에게는 사랑을, 신하들에게는 존경을, 적들에게는 두려움을 받았지만 이 기간 중에서 진정으로 행복했던 날은 14일밖에 없었다.' 이 인용문이 눈을 끈 것은 그때까지 이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점심식사 도중에 팀에게 말했다.
"아주 최근에 자네 백부가 편집한 인용구 사전을 샀어."
"그래?" 팀은 말했다. "그런데, 맨 앞의 항목에 틀린 게 있는데 알아차렸나?"
나는 아무것도 눈치챈 것이 없었다. 팀이 그런 말을 물은 것은 나에게 사진과 같은 기억력이 있다는 소문에 초를 치려고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책의 맨 앞에 있는 항목이 무엇이었는지 조금도 짐작할 수 없었다. 그러나 재빨리 머리를 굴리던 나는, 이 책의 서문에서 (서문은 읽었던 것이다) 이 문고판(내가 산 책이다)이 하드커버판과 다른 점은 인용문이 저자별이 아니고 주제별로 되어 있다고 쓰여있던 것을 기억해냈다. 만약 하드커버판이 저자별로 알파벳 순으로 나와 있다고 한다면 압둘 라하만 3세의 인용문은 아마도 선두에 나와있을 것이다.
이 정도를 생각하는 데는 몇 초밖에 걸리지 않았기 때문에 "응, 알고 있어."하고 태연하게 대답했을 때에 내가 잠깐 틈을 두었다는 사실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팀은 경멸하듯이 말했다.
"허풍떨지 말게. 맨 처음의 인용문이 뭔지도 모르는 주제에..."
"알고 있어."하고 나는 말했다. "압둘 라하만 3세의 말인데, '나는 번영과 권력이 절정기에 달한 50년 동안 정치를 해서...'" 이렇게 나는 말하는 투로 아주 정확하게 끝까지 거리낌없이 해치웠다.
그제사 팀도 웬디도 어리둥절해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팀이 다시 물었다.
"그런데 틀린 곳은?"
"압둘 라하만 3세는 50년 동안 정치를 했다고 말한 것처럼 인용되어 있지만, 사실 그가 정치를 한 날짜는 기록에 따르면 49년밖에 되지 않아." (나는 이 매력적인 인용문에 대해서는 때마침 뭐든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진짜로는 완전히 틀린 게 아니지. 그는 햇수를 마호멧의 음력으로 헤아렸기 때문에 당시 1년은 354일밖에 되지 않거든."
나는 계속해서 말했다.
"물론 이 인용문이 처음에 나와 있는 것은 하드커버판 뿐이지. 소프트커버판에서는 441항에 있고 항목은..."
팀은 더이상 고집을 세울 수 없었다. 테이블 위로 몸을 내밀어 나의 소매를 잡아 자기 쪽으로 당기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아시모프, 되는 대로 인용구를 골랐을 뿐인데, 자네는 대체 어떤 녀석인가?"
이 책에서 다른 인용문을 골랐더라면 이런 곡예는 벌어지지 않았을텐데, 팀이 이것을 고른 것은 나에게는 생각지도 못했던 행운이었다.

-『아이작 아시모프 자서전 2』(아이작 아시모프 著 / 작가정신, 1995) pp.33-35

...우와 찍기의 달인 탄생! (아니 잔머리의 제왕이라고 불러야 하려나? OTL;;;;;;)
by 잠본이 | 2008/09/21 22:09 | 대영도서관 | 트랙백 | 덧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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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스마슈 at 2008/09/21 22:19
헐; 13을 한창 읽고 있는데, 14가 올라오는군요~; 실시간으로 포스팅을 보게 되다니 영광입니다. 그런데 11은 어디에 있나요? ^^;;
Commented by 아레스실버 at 2008/09/21 22:26
태그 찍어보세요.
Commented by 愚公 at 2008/09/21 22:38
아시모프니까 용서...
Commented by -Ida- at 2008/09/21 22:42
또 무심히 쉬크하게 지나간 "나에게 사진과 같은 기억력이 있다는 소문..." 이미 일상이 되어 버려 초연해 보이기까지 하는 자랑질...
Commented by 하얀까마귀 at 2008/09/21 22:59
장르는 좀 달라도 일화는 파인먼과 삐까삐까하군요 ^^
Commented by 페리 at 2008/09/21 23:38
아시모프..... 덜덜더덜;
Commented by 풍신 at 2008/09/22 00:51
아시모프...운이 좋게 그 인용구를 알고 있었군...
Commented by StarLArk at 2008/09/22 09:59
푸하
Commented by 엘레시엘 at 2008/09/22 12:06
그런데 '압둘 라하만'이 최선두 항목에 있다는 걸 찍어서 맞춘건 정말 대단한 운이군요(...) 아랍이나 기타 국가들 중에 'aa'나 'ab'로 시작하는 양반들이 있을지 모르는 일인데..
Commented by 半道 at 2008/09/22 13:41
이미지 관리도 잊지않는, 당신은 대인배!
Commented by 미친과학자 at 2008/09/22 14:18
과연 아시모프 거의 뉴타입 수준의 찍기왕...(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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