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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홈페이지-주인공을 맡은 정재영의 캐릭터가 거의 일당백의 괴물이다. 명나라 호위대장도 울고갈 검술실력에 제법 규모가 되는 상단을 이끄는 카리스마에 여자 꼬시는 말재간까지 거의 없는게 없다. 하찮은 무지렁이 상인이라고 스스로를 낮추지만 제법 고전을 인용하며 대화를 격조있게 이끄는 법도 아는 걸 보면 공부도 어느정도 했을 것이다. 부친이 병기개발에 종사했다는 설정도 중간에 밝혀지고 그 뒤에는 화포 만드는데도 이것저것 끼어들어 기발한 아이디어를 많이 내놓는다. 어찌보면 상당히 유치하거나 밥맛없게 보일 수도 있었을 이런 캐릭터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녹아들어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것은 역시 소탈하고도 능청스러운 사람됨을 한껏 끌어내어 인간적인 매력을 더하는 정재영의 연기력 때문일 것이다. 다만
<공공의적 1-1 : 강철중>을 먼저 보고 나서 이걸 보면 '그런데 저런 실력으로 왜 설경구한테는 못 이겼대?'라는 잡생각이 떠올라 영화를 진지하게 볼 수가 없어지니 주의해야 할 것이다. (크리스찬 베일 갖고 '배트맨에게 총 두자루만 쥐어줬으면 조커고 뭐고 다 때려잡았다'라는 농담이 나오듯이 앞으로는 '이원술에게 칼 한자루만 쥐어줬으면 강철중이고 뭐고(이하생략)'이라는 농담이 나올지도 모른다.)
-그에 비하여 여주인공을 맡은 한은정의 연기는 그냥 평범한 수준. 대화 도중에 합쇼체와 해요체가 막 오락가락해서 내가 지금 사극을 보는건지 현대물을 보는건지 헛갈리게 만드는 게 좀 거슬리지만 이건 각본의 문제지 배우가 어쩔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정재영과 주변인물들이 잘 커버해주긴 하지만 여러모로 어색한 구석이 두드러져서 다소 애매한 인상을 준다.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 조선의 운명을 건 비밀병기를 완성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책임감 때문에 마음을 꽁꽁 걸어잠그고 강한 체 하지만 속은 여린 캐릭터인데, 이러한 설정을 연기로 보여주기보다는 중간에 대사로 확 풀어버리는 감이 있어서 아쉬웠다. (게다가 명의 압력에 못이긴 조정 군사들에게 잡혀갈 때 정재영과 보여주는 애절한 멜로부분이 너무 길어서 늘어지는 감도 있었고 말이지) 그냥 지나가는 역할이었으면 대충 넘어갔을 수도 있는 연기력이었으나 너무나도 막중한 역할을 맡은 바람에 부족한 점이 더 눈에 띄어서 아쉬운 감을 더한다. 상단 식구들이나 명나라 사절단 등 주변인물들이 다들 평균 이상의 연기력을 보여주는 바람에 그러한 면이 더 대조되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어디까지나 나의 편견이지만)
-세종을 연기한 안성기는 <영원한 제국>의 정조에 이어 두 번째 임금 역할이지만 안타깝게도 그 영화를 직접 본 적이 없어서 비교는 불가능. 첫머리에 사신들의 오만함을 참고 있다가 옷갈아입는 자리에서 안 어울리는 욕을 신나게 내뱉는 부분은 좀 어색했지만 대체적으로 인자하면서도 결단력 있는 왕의 모습을 잘 보여주었다. (자기는 뒤에 물러서 있고 실무는 세자가 다 하지만) 특히 마지막에 부귀영화 다 버리고 표표히 사라져가는 주인공들의 뒤통수에다 절을 올리며 '짐은 왕이나 그대들은 황제다'라는 명대사를 날리는 부분은 눈물이 절로 솟아나게 한다.
-예고편에 나온 화살비만 보고 '딱 저 정도에서 끝나겠지'라고 예상하며 갔는데 마지막에 진짜 예상을 뛰어넘는 초병기가 나와서 뒤집어지는 줄 알았다. 근데 저렇게 되면 저건 이미 중세의 싸움이 아니라 거의 대량살상병기가 투입된 1차대전 말기에 가까워지는데 어차피 국지전에서 딱 한 번만 쓰고 마는 걸로 나오기 때문에 그런 오버테크놀러지스러움은 적당히 넘어가는 듯 하다. (전문가 고증을 거쳐 재현했다고 하나 어느 정도는 극적 효과를 위한 뻥이 섞여있지 않을까 싶다.) 사실 내용만 놓고 보면 <디워> 따위보다 훨씬 더 애국심 마케팅에 어울리는 영화가 되겠으나 그런 움직임은 아직까지 보이지 않아서 묘할 노릇이다. 그거야 어떻든 '강한 나라에게 억눌려 원한을 쌓아가던 작은 나라가 과학의 힘으로 본때를 보여준다'라는 패턴을 아주 충실하고도 효과적으로 구현한 작품이기 때문에 굳이 애국심을 불태우지 않더라도 이야기 그 자체를 순수하게 즐기며 통쾌함을 느낄 수 있다. 사실 클라이막스의 그 '최종병기'를 보며 든 생각은 '드디어 한국에서도 밀리터리 매니아들을 들뜨게 만들 수 있는 <나치독일의 비밀병기>스러운 작품이 나오고야 말았구나!'라는 것이었으니 굳이 구구절절한 설명을 붙이지 않아도 충분할 것이다.
-그렇게 엄청난 병기가 어찌하여 후대에 전해지지 않았는지, 그리고 그렇게나 엄청난 위업을 이룬 주인공들이 적국 첩자나 국내 불만세력에게 충분히 이용당할 가능성이 있음에도 '이젠 그냥 조용히 살렵니다'하고 물러나도 문제 없는건지, 유일한 생존자인 사자 한놈의 말만 듣고 그 대명 황제가 갑자기 저자세를 취하는게 과연 타당한 마무리인지 등등 딴지거리는 한이 없지만, 그냥 현실 역사와 미묘하게 다른 점이 있는 평행세계라고 밀어붙이면 '그런건 아무래도 상관없어!'가 되니까 패스하자. (제작진은 팩션이라고 부르고 싶을지도 모르나, 이미 왜곡의 허용범위가 '픽션'을 한참 벗어난 탓인지 내 눈에는 조선이라는 배경을 빌어온 역사 판타지로밖에 안 보인다. 뭐 그것도 나름대로 좋지만 =)
ps1. 2차 실험발사 때 장치 결함으로 화살들이 쏜 사람 쪽으로 모조리 돌아와 터지는 걸 보고 '저걸 그냥 명나라에 건네주면 알아서 자멸하지 않을까'라는 헛생각이 떠올랐음 OTL
ps2. 동료들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기 위해 물귀신 되었으나 마지막엔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인하총각 지못미 (혼자 남은 방옥이만 불쌍하지 어흐흐 OTL)
ps3. 운 나쁘게도 명나라 군사들에게 주인공들과 내통한 게 뽀록나서 절명하신 동방불패(가명) 행수누님 지못미 (고증은 좀 괴이하지만 캐릭터 자체는 그런대로 매력적이었는데 그렇게 보내다니... 아이고 아까운 금강경... 으잉? OT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