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본? 성은요?' '그냥 잠본이야. 그를 아는 사람들은 포털 잠본이라고도 부르지만.' '포털... 잠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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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이런 것이었구나!
얼마 전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자리에 앉아 있는 어떤 사람이 <맛의 달인> 번역판을 펼쳐놓고 읽는 것을 목격했다. 당연히 거리가 좀 떨어져 있었던지라 말칸에 들어있는 글자는 읽을 수 없어서 그냥 그림만 곁눈으로 살짝살짝 들여다보게 되었는데, 그 책의 그림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특이한 점이 한 가지 떠올랐다. 캐릭터들은 상당히 단순하고 간결한 선으로 알기 쉽고 뭉툭하게 그려져 있는 데 비해 주변의 배경이나 사물들(특히 진짜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음식들')은 실제 사진을 방불케 할 정도로 정밀하고 섬세하게 그려져 있었던 것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요리에 대한 가르침을 주기 위해 그 회에만 잠깐씩 등장하는 요리사들의 얼굴은 레귤러 캐릭터들보다 약간 더 극화에 가깝게 사실적인 터치로 그려져 있어서 미묘하게나마 '뭔가 다르다'라는 느낌이 들었다는 건데, 이게 이 에피소드에서만 그런지 작품 전체에서 그런 경향이 나타나는지는 잘 모르겠으니 더 이상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렇게 바라보니 평소에는 모르고 지나쳤던 몇 가지 효과가 눈에 들어왔는데, 우선 간결하게 그려진 캐릭터들은 복잡한 주변 배경과 대조를 이루면서 눈에 확 띄어 어떤 움직임을 보이고 어떤 표정을 짓는지 좀더 확실하게 감정이입이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섬세하게 그려진 음식은 그러한 캐릭터들과 정반대로 '외부의 사물'로서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객체라는 점이 보다 분명하게 인식되고, '나도 한번 먹어보고 싶다'라는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만약 캐릭터도 사물도 모두 실사체로 그려졌더라면 그림이 너무 복잡해져서 내용을 따라가기 힘들었을 것이고, 반대로 캐릭터도 사물도 모두 단순화되어 그려졌더라면 음식이라는 객체가 '하나의 기호'로밖에 느껴지지 않아서 '뭔가 대단하다고들 떠들고는 있는데 뭐가 그런건지 모르겠네'라는 의구심을 불러일으켰을지도 모른다. 캐릭터는 단순화되고 배경은 사실에 가깝게 그려졌기 때문에 비로소 독자인 우리는 그 캐릭터들을 매개로 하여 작품 속에 빠져들어서 사실적으로 그려진 배경과 사물이 유발하는 가상의 자극(시각뿐만 아니라 청각, 촉각, 미각 등등)을 체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천재라서가 아니라(...) 예전에 스콧 맥클루드(요즘은 맥클라우드라고 쓰는 모양이지만 그냥 초판 때 표기법에 따르자면)의 '만화의 이해'에서 바로 이런 내용을 읽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에르제의 '땡땡' 시리즈를 예로 들면서 단순한 캐릭터와 복잡한 배경의 상승효과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아주 잠깐이긴 하지만 의미심장하게) 강조하고 있는데, 그 내용이 내 머릿속에 남아 있다가 <맛의 달인>의 장면들을 보는 순간 되살아났던 것이다. 아무래도 대사를 보지 못해서 줄거리를 따라가지 않고 장면 그 자체에만 집중하다보니 더더욱 그러한 스타일의 특징이 눈에 잘 들어왔고, 급기야는 예전에 보았던 맥클루드의 이론에까지 연결시키게 된 것 같다. (그러고보면 <미스터 초밥왕>에서도 음식 클로즈업이나 주변에서 환호하는 엑스트라들은 유난히 극화에 가깝게 그려졌는데 그게 다 이유가 있었구만)

별로 상관없어 보이는 것들이 알고보면 어딘가 연결되는 구석이 있다는 걸 알아차리는 건 역시나 즐겁다. =)
by 잠본이 | 2008/08/30 16:14 | 만화광시대 | 트랙백 | 덧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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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엘레시엘 at 2008/08/30 16:37
'단순화된 캐릭터에 실사에 가까운 배경'이라고 하니 요츠바랑! 이 생각나는군요 'ㅅ'a
Commented by 나이브스 at 2008/08/30 17:03
사실 그 만화의 주는 요리이니까요
Commented by mirugi at 2008/08/30 17:33
아다치 미츠루 작품도 마찬가지죠.

…그러나 『맛의 달인』이나 아다치 미츠루 만화의 경우엔, 그 실사처럼 섬세한 배경은 전부 작가 본인이 아니라 어시스턴트들이 그려낸 것이라는 점이 중요하겠습니다만.
Commented by rumic71 at 2008/08/30 18:02
작품이 전체적으로 그렇습니다. 물론 연재 초반에 비해서 레귤러들도 많이 정교해지긴 했습니다만.
Commented by _tmp at 2008/08/30 18:02
미루기님 언급도 있지만 어시스턴트겠죠. 뱅크도 상당히 쓸테고.
Commented by sharkman at 2008/08/30 22:30
그러나 뒤로 가면 그림이 전부 개판 오분 전이 되서 어차피 신경도 안쓰는 레벨이되니까...

만화화된 캐릭터와 세밀한 배경의 가장 극단적인 예라면 미즈키 시게루의 만화를 들 수 있겠죠. 미즈키 시게루는 캐릭터는 어시가, 배경은 자기가 그린다고.
Commented by winbee at 2008/09/01 09:34
캐릭을 어시가.. 배경을 작가가... 우와 신선하네요;;
Commented by Sori at 2008/08/31 23:39
최근으로 올수록 그런 점들이 더 두드러지는 것 같아요. 암것도 모르는 저로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맛의 달인은 언젠가부터는 거의 다큐 내지는 아카이브가 되어버렸으니 ^^;
Commented by winbee at 2008/09/01 09:50
저도 몇몇 작가 만화 배경 그려줄때 그런 밸런스가 신경 쓰이긴
했었는데 국내 작가들이라는게 대부분 빈공간에 뭐 채우기에만
급급했던지라 .. (하다못해 팬레터가 수북하게 쌓이는 작가까지도)
사실,맛의 달인 경우에는 캐릭터가 원래부터 그렇게 생겼으니
그런게 아닐까 싶네요. 그 배경에 사에바 료를 넣어도 크게 어색하진 않을테니까요;
단지 그림 대비가 강해 보이기 때문에 나오는 효과라 생각이 드네요..

마리오네트 제네레이션..이라는 예전에 제가 몸살나게 좋아했던 뉴타입
연재만화를 보면 중반 즈음에 그당시로서는 첨단기술(?)이었던
"배경사진 스캔하고 컴퓨터에서 외곽선 필터쓴다음 톤 붙이고 먹칠만
하기"라는 신공도 있었긴 했습니다만;
Commented by sharkman at 2008/09/02 20:22
미키모토 내내 그 짓하는 거 같던데요.
Commented by Attica at 2008/09/04 15:17
오,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군요.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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