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본? 성은요?' '그냥 잠본이야. 그를 아는 사람들은 포털 잠본이라고도 부르지만.' '포털... 잠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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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마법을 쓴다
원제: Conjure Wife
저자: 프리츠 로이터 라이버 주니어
역자: 송경아
출판사: 웅진지식하우스

한가로운 시골 대학에서 평온한 삶을 누리던 민속학 교수 노먼 세일러는 어느날 우연히 아내의 화장대에서 수상쩍은 물건들을 발견한다. 겉보기엔 자기보다 훨씬 합리적이고 냉정한 줄 알았던 아내 탠시가 남편의 신변을 염려하여 여기저기서 배운 마법지식을 이용해 주문을 걸어둔 것이다. 아내의 이런 걱정을 단순한 신경증이라고 확신한 노먼은 아내를 설득하여 문제의 물건들을 불태우고 더 이상 마법에 관심을 갖지 않도록 조처한다. 그러나 바로 그날부터 노먼의 주변에 도저히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한 일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성적에 불만을 품은 학생이 협박전화를 걸고, 노먼을 상대로 망상연애를 펼치던 여학생이 학교측에 고발을 하고, 자기에게 돌아올 거라고 믿었던 학과장 자리는 다른 사람에게 돌아가고, 그전까지는 전혀 문제되지 않았던 노먼의 사교관계와 연설내용에 대해 학교측이 딴지를 걸기 시작한다. 정체모를 불안의 강도는 점점 커져만 가고, 남편의 고민을 눈치챈 탠시는 어떻게든 그를 지키려고 노력하다 생각지도 못한 곤경에 처한다. 이제 노먼은 아내를 구하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평생 미신으로만 생각했던 마법의 존재를 진심으로 믿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데...!

-미국 판타지/SF 부문에서 꽤 알려진 작가인 프리츠 라이버가 1943년에 발표한 소설. 첫머리에서는 평범한 미국의 지식인 가정을 배경으로 훈훈한 분위기의 전원소설처럼 시작하지만 점점 일상 속에 비일상적인 '마법'과 '저주'의 요소가 침투하면서 주인공의 신변에 불길한 사건이 계속해서 닥쳐오는 호러 판타지로 변하더니 후반부에는 주인공이 그러한 비현실적인 요소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상황에 대처하여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마법 스릴러의 면모를 보여준다. 3인칭 서술 구조를 취하면서도 대부분의 사건은 주인공인 노먼의 시점에서 제시되기 때문에, 독자도 큰 무리 없이 그의 뒤를 따라가면서 이야기를 즐길 수 있다. 본래 노먼은 여러 민족의 미신과 마법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연구경험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러한 것들이 심리적인 위안을 줄 뿐이지 물리적인 효과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전형적인 합리주의자인데, 점점 요상한 사건을 겪으면서 '하지만 만약 이런게 다 진짜라면?'이라는 회의에 빠져들면서 서서히 자기의 견해를 수정해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또한 실제로 믿지는 않아도 어쨌거나 연구한 지식은 남아있다보니 '좋아 한번 믿어보지 뭐'라는 쪽으로 돌아서서 마법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하자 놀랄 만한 흡수력을 보여준다는 점도 그럴듯하다. 강대한 마법력을 지닌 적에게 대처하려는 목적으로 이제까지 알려진 모든 부족의 마법양식을 공식화한 다음, 그 안에 숨어있는 공통요소를 가려내기 위해 수학 방정식을 활용한다는 착상도 기막히다.

-본 작품에서 다루는 마법은 통상의 이세계 판타지에서 다루는 요란뻑적지근한 마법보다는 훨씬 교묘하고 눈에 잘 띄지 않는 스타일을 취하고 있는데, 일정한 특성을 지닌 재료를 한데 모아 정해진 방식으로 가공, 배열, 정제하고 거기에 사용자의 사념을 투사하여 원하는 결과를 초래하거나 외부의 악영향을 튕겨내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언어로 구성된 주문이나 특이한 아이템은 전혀 등장하지 않으며, 일상생활에서 흔히 찾아낼 수 있는 재료를 활용하여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아무 의미없는 것처럼 무심하게 보여주는 행동(이를테면 매듭 묶기나 종이에 낙서하기, 집안에 부적 숨겨놓기 등등)을 통하여 은근슬쩍 주술을 행하는 것이다. 어찌보면 <다아시 경 시리즈>에서 묘사되는 공식 과학화된 마법과도 비슷하게 느껴지지만, 여기서의 마법은 어디까지나 소수의 사람들(주로 여성들) 사이에서 비밀스럽게 전수되거나 개인적으로 창안되며, 워낙 그 효용이나 파급력이 변화무쌍하여 객관적인 이론체계를 세우지 못한 상태라는 점이 다르다. 작품 내의 세계는 겉으로 보기엔 우리 세계와 마찬가지로 과학이 지배하는 평범한 세상이지만 사실 그 이면에서는 남자들을 얼굴마담으로 세워놓고 보이지 않는 마법을 구사하여 서로를 견제하면서 치열하게 싸워나가는 여성들의 전쟁이 펼쳐지는 처절한 세계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마법 자체를 그려내는 데 집중하기보다는 마법의 존재가 인간들에게 미치는 영향이나 그로 인한 파급효과를 꽤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SF스러운 성격도 꽤 강하다고 할 수 있다)

-본 작품의 재미는 주인공 노먼이 어떻게 해서 그러한 세계관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는가, 그리고 어떻게 그 속에서 펼쳐지는 싸움에 말려들어가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떻게 그러한 위기를 타개할 것인가를 지켜보는 데 있다. 마법을 단순한 히스테리로 오해한 노먼은 본의아니게 아내가 걸어놓은 마법을 다 풀어버리고 그녀 자신을 무장해제시킴으로써 자기는 대학에서 쫓겨나고 아내는 영혼을 빼앗길 위험에 처하게 된다. 범인도 알고 범행 방법도 대충은 알지만 너무나 허황해서 바깥 세상에는 말할 수도 없고 도움을 청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고 아내의 영혼을 되돌리기 위해(혹은 그렇게 믿는 그녀와 적들의 망상을 치료하기 위해) 이제는 노먼 본인이 마법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적들과 같은 방식으로 반격을 가해야만 하는 것이다.

-꽤 특이한 소재에다가 일견 황당할 수 있는 스토리일 뿐만 아니라 이 작품 자체가 출간된지 60여년이 지났는데도 전혀 낡은 느낌이 들지 않고 신선하게 읽히는 것은, 그러한 황당한 스토리를 헤쳐나가는 주인공의 심정이나 갈등이 꽤 현실적으로 다루어지고 있으며 그가 직면하는 인간관계의 어려움이나 인간 내면의 추악함이 현대에도 거의 변치 않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일상과 비일상의 충돌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주는 다크 판타지를 표방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평화로운 시골생활 속에 감춰진 암투와 모략을 흥미진진하게 그려내는 풍속소설의 면모도 가지고 있고, 또 한편으로는 절망적인 상황에 빠진 아내를 구하기 위해 이제까지 몰랐던 그녀의 다른 측면을 이해하고 진심으로 동참하려 하는 남자의 성장을 그린 로맨틱 어드벤처로 보아도 모자람이 없다. 거기에 더하여 결말 부분에서는 정상으로 돌아온 아내가 '정말 그 모든걸 믿는건지, 아니면 부인네들 망상을 고치기 위해 믿는 척 하는건지'를 묻자 고민하던 주인공이 결국 '모르겠는걸'이라고 애매하게 답변하는 장면을 보여줌으로써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는 어디인지,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은 어느 정도까지 믿을 수 있는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기회를 주기도 한다.
by 잠본이 | 2008/08/17 18:37 | 대영도서관 | 트랙백 | 핑백(1)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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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여줌으로써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는 어디인지,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은 어느 정도까지 믿을 수 있는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기회를 주기도 한다. ※원문 작성: 2008-08-17 마법사장편판타지프리츠 라이버 Previous article Be the first to comment Leave a Reply 응답 취소로그인을 해야 댓글을 남길 수 ... more

Commented by 니트 at 2008/08/17 21:10
재미있어 보이는군요.. 돈 되면 구해서 읽어봐야 겠습니다.
Commented by rumic71 at 2008/08/17 22:43
카터딕슨 작품 중에 아내가 마녀로 의심간다는 이야기가 있었죠. 마지막 한 챕터를 안읽으면 미스테리, 다 읽으면 오컬트가 된다는 교묘한 구성.
Commented by Semilla at 2008/08/17 23:48
저주라고 생각했던게 사실은 사랑의 보호주술이었던 Sleepy Hollow가 생각나네요. 다음에 책방에 가면 찾아봐야겠습니다.
Commented by LustShaker at 2008/08/18 01:00
아 재밌겠다.... 좋은 리뷰 포스트 잘 읽었습니다.
요즘 읽을만한 소설이 없어서 심심했었는데 꽤 재밌을것 같은 소설을 발견하게 되었군요ㅎㅎ
Commented by 달바다 at 2008/08/18 02:03
재미있겠네요.구해서 읽어봐야겠습니다.
Commented by 영원제타 at 2008/08/18 22:35
무지 옛날 책임에도 굉장히 흥미진진하군요.
Commented by 여아 at 2008/08/23 22:48
덕분에 도서관에서 빌려읽게 되었습니다 ㅎㅎ 알 기회를 주셔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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