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극장가를 석권하였으나 이제는 한풀 꺾인 감이 있는 무협영화와 동물만화(미국에서는 funny animals 라는 별도 장르로 분류한다)의 좋은 점만을 모아 현대 관객들이 한바탕 왁자지껄하게 웃고 즐길 수 있는 히로익 코미디를 만들어낸 제작진의 열의에 경의를 표한다. 어린 관객을 배려한 탓인지 90분 남짓한 상영시간 동안 쉴새없이 개그와 액션이 난무하며 리듬감 있게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는데, 현실 장면은 매끈한 질감의 3D로, 환상이나 꿈 장면은 거칠거칠한 중국풍 색채의 2D로 처리함으로써 비주얼의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유명 배우들을 성우로 캐스팅하는 할리우드의 관행도 이제는 별로 새로울 것이 없지만, 여기서는 특히 실제 배우의 성격이나 개성을 극대화하여 캐릭터에게 그대로 이식하는 기법을 최대한 살림으로써 다른 작품을 능가하는 효과를 끌어내고 있다. (뚱땡이 팬더 '포'의 순진함과 탐욕과 유쾌함과 멍청함이 뒤범벅된 얼굴과 특유의 뱃살로 상대를 KO시키는 막강함은 그야말로 살아있는 잭 블랙 그 자체였다. 상황에 맞춰 미묘하게 목소리 톤을 바꿔가며 괴연을 펼치는 더스틴 호프만의 시푸 사부도 극강!)
-무대를 '중국'으로 잡고 있음에도 여러가지 미국적인 조크가 끼어들고, 무협에 관련된 몇몇 묘사에서는 서양인의 시각으로 본 동양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어서 눈쌀을 찌푸리게 하지만, 이름만 중국인 가상의 세계를 무대로 의인화된 동물들이 뛰어노는 판타지라 생각하면 못봐줄 만한 수준은 아니다. '무적 5인방'(The Furious Five)과 악당 타이렁의 진지하고도 처절한 싸움이 <와호장룡> 등의 시리어스 무협을 연상케 하는 데 비해 변칙과 소도구와 개그가 난무하는 뚱땡이 포의 신나는 싸움은 <취권> 등의 성룡식 슬랩스틱 무협을 떠올리게 하는지라, 한 작품에서 서로 다른 두 가지 스타일의 무술 대결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도 재미난다. (특히 만두 하나를 놓고 시푸와 포가 젓가락 대결을 펼치는 수련장면은 성룡 영화의 영향이 꽤 크지 않을까 싶다)
-시각을 달리해서 보면 이 작품의 진정한 주인공은 시푸 사부다. 사전정보를 전혀 접하지 않고 캐릭터 디자인만 봤을 때 '이 귀 큰 할배가 주인공을 스카웃해서 키워주려나 보군. 근엄하고 고매하고 실력도 굉장한 퍼펙트 사부겠지'라고 멋대로 생각했는데 웬걸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친자식처럼 정성들여 기른 수제자는 악당이 되어 복수하러 오고, 유일하게 믿고 있었던 대사부는 선문답같은 뜬금없는 소리만 해대다가 멋대로 승천해버리고, 새로운 제자들은 잘 하기는 하는데 뭔가 좀 부족하고, 난데없이 대사부가 지명하는 바람에 수제자로 들어오게 된 놈은 재주는 메주인데다가 딴생각만 가득하고 하니 그야말로 미칠 노릇이다. 물론 무술 실력은 엄청나고 아는 것도 많긴 한데 인격 면에서 보면 대사부보다 한참 밀리는데다가 옛날에 폭주해버린 첫번째 수제자 때문에 마음에 깊은 상처를 갖고 있어서 제자들 앞에서는 절대 웃지 않고 엄격한 모습만 보이며, 뚱땡이 포가 용의 전사로 지명되자 죽어도 인정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며(사실 이건 시푸가 아니라 다른 누구라도 당연히 보일만한 반응이지만) 녀석을 몰아내기 위해 별별 잔머리를 굴리는 쪼잔한 면모까지 보여준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 작품에서 가장 현실적이고 입체적인 성격을 지닌 캐릭터인 것이다.
-이 작품은 그러한 성격의 소유자인 시푸 사부가 좀 엉뚱하고 허황된 꿈에 빠져 있으면서도 포기를 모르고 유연한 발상을 쏟아내는 '포'를 만나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고 진정한 '마음의 평화'를 되찾는 이야기다. 우그웨이 대사부가 지나가는 말처럼 내뱉은 '명심하게, 용의 전사는 이 마을뿐만 아니라 자네에게도 평화를 가져다줄 것이야'라는 대사가 이에 대한 복선이었던 것이다. (이미도씨의 자막에서는 이걸 그냥 '용의 전사는 반드시 평화를 지켜야만 하네'로 뭉뚱그려 버려서 나중에 시푸가 깨달음을 얻고 너털웃음을 터뜨리는 장면과 이어지지가 않는 치명적인 결점을 드러내고 있다. 사람들 웃기려고 의역하는 건 어쩔 수 없다지만 이런 중요한 부분은 좀 제대로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일은 알바생에게 시키고 자기는 이름만 걸었나?)
-능력은 탁월하지만 과거의 문제로 인해 마음이 굳어 있던 캐릭터가 정반대 유형의 상대역을 만나면서 차차 마음을 열어간다는 패턴은 그리 드문 것은 아닌데, 이 작품은 그런 패턴을 전혀 어색하지 않게 잘 살려낸 편이다. 최근 작품 중에서 비슷한 유형을 찾다 보니 가이낙스의 <톱을 노려라 2!>가 떠오른다. 이 작품 또한 진 주인공인 라르크 메르크 마르가 간판 주인공인 노노의 영향으로 인해 인간적으로 성숙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거의 신선의 경지에 다다른 대사부와 뭔가 2% 부족한 제자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하는 '낀세대' 교육자의 일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스타워즈 프리퀄의 오비완 케노비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영화를 보기 전에 외모로만 상상하기로는 요다 역할이 아닐까 했는데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럼 우그웨이 대사부는 콰이곤 진이고 타이렁은 아나킨 스카이워커인 셈인데... 루크가 있어야 할 자리에 뚱땡이 포가 들어선 걸 상상해보니 뭔가 엄청 어긋난 느낌이 드는구만... 사실 포는 루크라기보다는 쟈쟈 빙크스에 가까운 성격이잖아! OTL)
-다른 한편으로는 구제불능의 몸치에다 머릿속엔 쓸데없는 잡지식만 가득하고 남들과 다른 삶을 무던히도 동경하는 주인공 포를 처음에는 멀리하다가 대사부의 가르침에 따라 마음을 고쳐먹고 성실하게 지도하는 시푸 사부의 교육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다. 이전에 다른 제자들을 가르치던 방식대로는 도저히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은 시푸가 평소에는 굼벵이처럼 느려터졌지만 먹을 것만 보면 눈이 뒤집히는 포의 습성에 착안하여 그의 체질과 성격에 맞춘 개인 트레이닝을 펼침으로써 차차 포의 성장을 유도해나가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이 작품은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그들을 가르칠 선생님들에게도 한 번 정도는 보여줘야 할 유익한 교육영화라고 생각된다. (타고난 습성을 무리하게 바꾸거나 개조하지 않고 저마다에게 맞는 방법으로 자연스럽게 재능을 끌어냄으로써 원하는 성과를 이루도록 한다는 것이 말로는 쉬워도 사실 무지하게 어려운데, 시푸 사부는 제자에 대한 믿음과 자기 한계를 인정하는 겸손을 통하여 그 장애물을 뛰어넘었다. 실로 교육계의 살아있는 귀감이다!) 처음에는 장난으로만 일관하던 뚱땡이 포도 결국 그러한 스승의 마음에 응하여 진정한 용의 전사로 거듭나는 성과를 보여주고 스승의 마음을 치유하는 과업을 이루었으니 그야말로 성공적인 윈-윈 전략의 본보기라 하겠다.
-그렇다고 해서 포가 갑자기 밑바닥부터 확 바뀌어 엄청난 무술의 달인이나 신선급의 도인으로 변모한 것은 절대로 아닌데, 여기에 바로 이 작품의 핵심이 들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포는 국수집 아들로 태어나 면발이나 뽑으며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자기 처지를 비관하여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고 싶다'고 계속 생각해 왔지만, 그것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시푸의 교육을 통해 포는 '전혀 다른 누군가가 되는 법'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그것을 발판 삼아 새로운 자기 자신을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법'을 체득한다. 아무리 용의 전사라고 해도 포는 여전히 뚱땡이 포이며, 스승의 처소로 가기 위해 올라가야 하는 엄청난 숫자의 계단을 오르면서 헉헉거리는 것도 변함이 없지만, 그는 예전과 달리 자기 자신을 더이상 부정하지 않고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자기 나름의 재주를 발휘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스킬을 익히게 된 것이다. (고생고생하여 얻은 용의 두루마리가 실은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백지이며, 그 위에 비치는 것은 단지 자신의 얼굴뿐이라는 사실은 '원래 비법같은 건 없었다'라는 중요한 대사와 더불어 이러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기폭제로 작용한다)
-우격다짐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연스럽게 발전하도록 북돋워주는 것 - 그것이야말로 우그웨이 대사부가 승천하기 전에 시푸에게 남겨준 가르침의 정수이며, 이 작품이 바탕에 깔고 있는 기본 테마이다. 결국 악역을 맡은 타이렁도 시푸의 지나친 기대와 교육열로 인해 무술의 고수로 개조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용의 전사가 되지 못하자 절망하여 악의 길로 타락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러한 테마를 부각시키기 위한 반면교사라 할 수 있으며, 선과 악이라는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교육 방식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도 뚱땡이 포와는 대척점에 서 있는 캐릭터인 것이다. (뭐 어찌보면 단순히 힘만 세고 잔인한 바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엔딩 크레딧이 지나간 다음에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이 시푸가 심었으나 까맣게 잊고 있었던 복숭아 씨앗이 새로운 싹을 틔워올리는 장면이라는 사실은 이런 테마와 연관지어 보면 매우 의미심장하다.
-다만 포와 시푸의 드라마에만 집중하다 보니 설정만 보면 꽤 파워풀한 조연들인 '무적 5인방'의 개성이 충분히 발휘되지 못했다는 점은 아쉽다. 그나마 크레인(학) 정도가 대사가 좀 많은 편이고, 타이그리스(호랑이)는 타이렁 때문에 상처입고 마음을 닫아버린 시푸의 과거를 이해하고 그를 어떻게든 구원하고 싶다는 진심이 느껴져서 인상적이었지만, 나머지 세 명은 상당한 실력자임에도 불구하고 별로 기억에 남는 장면이 없다. (특히나 뱀아가씨와 원숭이형은 성우가 루시리우와 성룡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탈옥한 타이렁과 한판 붙었다가 참혹하게 진 뒤에는 완전히 기가 꺾여서 사부가 시간을 끄는 동안 주민들 대피시키는 뒷처리꾼 역할에 머무는 바람에 더더욱 안타깝기만 하다. 또한 악역이 타이렁 혼자다 보니 실제 이야기의 중심을 차지하는 대결구도가 좀 약해서 싸움 자체는 장렬하고 시원하게 펼쳐지지만 끝나고 난 뒤에는 '결국 한놈 쓰러뜨리고 끝이냐'라는 허전함이 남는 것도 유감이었다. (하긴 타이렁에게 부하나 지원세력까지 붙여주고 하다 보면 소개하고 퇴장시키고 하는 시간까지 합쳐서 2시간이 넘어갈테니 과감히 자를 수밖에 없었겠지만) 본 작품의 괜찮은 흥행 기록에 힘입어 드림웍스에서는 벌써 속편 기획에 들어갔다고 하는데, 만약 속편이 나온다면 이러한 점을 보강하여 좀더 스펙터클한 이야기를 만들어줘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솔직히 포와 시푸 사부의 이야기는 이거 한편으로 훌륭히 완결되었기 때문에 더이상 뭘 덧붙여봐야 사족이 될 뿐이니 조연들의 드라마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엔딩 크레딧에서도 배경 일러스트를 통하여 주인공들이 그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보여주기 때문에 끝까지 남아서 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포에게 면발뽑기를 시키고 시푸와 느긋하게 장기나 두고 있는 포의 아버지라던가, 포가 보여준 국수 개그를 이용하여 결국 시푸를 웃게 만드는 데 성공하는 (그럼에도 자기는 끝까지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타이그리스의 재치라던가, 포가 보여주는 용의 두루마리에 자기 얼굴을 비춰보며 신기해하는 마을 아이들의 모습이라던가, 잘 살펴보면 여러모로 정성들인 장면들이 많다. (그나저나 포는 이미 5인방도 인정하는 국수솜씨를 갖춘 데다가 쿵후 실력도 인정받았으니... 남들은 한가지 기술도 갖추기 어려운 이 시대에 이미 두 가지나 장인급으로 익혔으니 앞으로 먹고사는데엔 걱정 없겠구만 우우우 부러운놈 OTL)
-지독한 쿵푸 오타쿠이지만 평범한 민간인이었던 포가 마을을 구한다는 구도만 놓고 보면 마치 전자오락에 빠져 살던 소년이 우주전쟁에 스카웃되어 행성 하나를 구한다는 <라스트 스타파이터>를 연상케 하기도 한다. 다만 이 작품에선 이미 재능이 있었던 주인공을 우리편에서 적극적으로 스카웃한 거고, 포의 경우는 우연히 사건에 말려들어버린 바보가 그 바보스러움을 극한으로 끌어내어 우리편을 구원한다는 식이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다르지만. (만약 포가 싸움을 벌이면서도 그 잡지식을 줄줄 늘어놓고 그것이 승패에 영향을 주는 구도였다면 <갤럭시 퀘스트>에 나온 트레키 청년들 생각도 났겠지만 다행히도[?] 그정도로 막장스럽게 가지는 않는다 OTL)
-드림웍스는 어린시절의 타이그리스와 타이렁 인형을 발매하라! 발매하라! (그냥 스쳐지나가는 정도긴 하지만 양키작품에서 요런 식의 모에캐릭터를 둘이나 등장시키다니 이런 무서울 데가 OT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