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본? 성은요?' '그냥 잠본이야. 그를 아는 사람들은 포털 잠본이라고도 부르지만.' '포털... 잠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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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김] N과 G의 초상
"너는 나보다 풍부한 자질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나보다 약해. 너는 내가 하는 이야기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을 때가 많았어. 가끔 너는 망아지처럼 거역했고, 너를 달래는 것은 확실히 쉽지 않았지만 나는 너에게 자주 고통을 주지 않으면 안 되었지. 나는 또 너를 깨우지 않으면 안 되었어. 너는 잠을 자고 있었으니 말이야. 너에게 어머니를 생각하게 한 것도 처음에는 심한 고통을 주었지. 너는 회랑에 시체처럼 쓰러졌었어.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것이었지. 아니, 내 머리칼을 쓰다듬지마! 아니, 그만둬! 난 참을 수 없어."

[중략]

"너의 목표는 확실치가 않아. 나는 너를 그곳으로 인도할 수도 없고 따라갈 수도 없어. 네 어머니한테 물어 봐! 어머니의 모습에 물어 봐! 네 어머니한테 귀를 기울여 봐! 그러나 나의 목표는 확실해. 그것은 여기 수도원에 있고 매일 매시간 나를 요구하고 있단 말일세. 내가 너의 친구가 되는 것은 허락되어 있지만 반해도 좋다는 허락은 없어. 나는 수사야. 맹세를 했거든. 나는 성직을 얻기 전에 교직에서 물러나 단식과 예배 때문에 몇 주일 동안 들어앉게 될 거야. 그 동안 세속적인 것에 관해서는 일체 말해서는 안돼. 물론 너하고도."

[중략]

"이봐, 너는 아무래도 나를 잘 이해하지 못해! 나는 장차 수사가 될 너를 망쳤을지 모르지만 그 대신 비범한 운명에의 길을 네 마음 속에 터놓아 주었어. 가령 내일 네가 우리들의 아름다운 수도원을 송두리째 태워 없애 버린다 하더라도, 혹은 미치광이 같은 무슨 사교를 세상에 퍼뜨린다 하더라도, 너를 도와서 그 길을 향하게 한 것을 난 한순간이라도 후회하지 않을 거야."

-헤르만 헤세, 『지와 사랑』 (청목출판사 1992년판) pp.63-65

원제가 '나르찌스와 골드문트'임에도 사실상 작품의 2/3가 골드문트에게 할애되어 있어서 뒤로 갈수록 거의 등장하지조차 않다가 늘그막에 겨우겨우 재회하게 되는 나르찌스가 젊은날의 한때 골드문트에게 날려주시는 명대사의 향연. 작가의 의도에 따라서 형이상학적으로 보면 이성과 철학과 '남성적 정신'의 상징인 나르찌스가 자기와는 반대로 감성과 예술과 '여성적 정신'의 상징인 골드문트에게 '너와 나는 갈 길이 다르니 그만 찢어지자'는 식으로 각성을 촉구하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지만, 약간 색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자기는 열심히 공부를 해서 고결한 성직자가 되고 싶은 야심이 있는데도 하필이면 풋풋한 후배이자 제자인 골드문트에게 필이 꽂히는 바람에 마음이 흐트러져서 도저히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게 된 나르찌스가 그것도 모른 채 자꾸만 자기에게 엉겨붙는 골드문트를 일부러 떼어놓기 위해서 속마음과는 반대로 저런 소리를 하는 게 아닌가싶을 정도로 애절하고도 야시럽게 들리니 이것참 문제인 것이다. ('데미안' 마지막 장면도 그랬지만 정말 헤세아저씨 글에는 어째서 이렇게나 탐미의 극을 달리는 장면이 많은 것인지 OTL) 그래놓고는 수십년 뒤 죄수와 사제로 재회했을 때 골드문트가 '그대를 모델로 하여 세례 요한의 상을 만들 계획을 세운 적이 있다'고 하니 '그럼 그동안에도 나를 생각했었단 말인가?'라며 은근슬쩍 기뻐하는 건 또 뭐냐고. (이 형씨도 알고보면 츤데레? OTL)

......근데 동인녀라면 만화라도 그리겠지만 내가 이런거 생각해서 뭐에 쓰나 (한숨)
by 잠본이 | 2008/05/10 22:31 | 대영도서관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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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StarLArk at 2008/05/10 23:16
부녀자를 위한 문학의 역사는 길고도 길군요
Commented by 바람소리 at 2008/05/11 03:05
보면서 vi와 vt 생각만 했어요. 나르치스도 그렇게 골드문트도 그렇고 제게 새로운 길을 보여준 친구분들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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