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본? 성은요?' '그냥 잠본이야. 그를 아는 사람들은 포털 잠본이라고도 부르지만.' '포털... 잠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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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안느의 투쟁
원제: Marianne au combat
저자: 모리스 아귈롱
출판사: 한길사

18세기말 프랑스에서 대혁명의 불꽃이 피어오르고 전제왕정이 사실상 무너진 이후, 대부분 부르주아나 엘리트 지식인으로 이루어진 혁명의 주도세력은 어떻게 무지몽매한 민중을 지도하여 자기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공화정'이란 시스템을 건설하고 정착시켜나갈 것인가에 관해 여러 가지로 고민했다. 그 방법 중 하나로서 채택된 것이 체제의 상징으로서의 '여성 알레고리'인데, 이러한 방법을 통하여 민중에게 공화국을 사랑하고 지켜야 할 대상으로 주입시키는 동시에, 자기들의 혁명에 대한 열정을 거의 종교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승화시키려 꾀한 것이다.

어떻게 해서 여성이 공화정의 심볼이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구구한 설이 제기되고 있지만, 일단 유력한 이유로서는 1) 왕이나 기타 특정한 통치자를 내세울 경우 개인숭배를 부추겨 독재로 흐를 염려가 있었기에 불특정 다수를 가리키는 상징이 필요했고, 2) '자유'나 '공화정' 등의 개념은 사실상 고대 로마 시절에 발명된 것을 재발견한 것에 불과하였는데 그러한 개념들은 대부분 여성으로 상징되는 것이 그때의 관습이었으며 또한 그러한 개념을 표시하는 단어들이 라틴어나 프랑스어에서 여성명사로 사용되었고, 3) 당시 여성의 지위는 상당히 열악하고 특히 정치적으로는 무시받는 위치에 있었기에 남성보다는 여성을 상징으로 내세움으로써 혹시나 있을지도 모르는 다수파의 불안을 예방하려는 것이었다... ("그녀는 우스꽝스러울 망정 적어도 쿠데타는 일으키지 않는다") 라는 정도가 제시되고 있다. 정작 실제 정치과정에서는 여성을 소외시켜 놓은 주제에 보기 좋으라고 간판아가씨로나 세워놓았다는 소리니 여성 입장에서 들으면 복장이 터질 이야기다.

이러한 시대상황을 배경으로 하여 역사에 등장한 여성 알레고리는 '공화정'이라는 이름을 부여받고 때로는 단독으로, 때로는 혁명의 기본정신인 '자유' '평등' '우애/형제애'(이 정신은 사실상 남성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박애라는 번역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 요즘의 수정주의적 견해다)와 나란히 숭배받게 되었다. 혁명세력은 이 상징들을 조각상, 회화, 동전, 우표, 기념물, 퍼레이드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범위에 퍼뜨림으로써 대중의 공화국에 대한 신념을 고취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후 나폴레옹의 제1제정이나 복고왕정, 루이필립의 7월왕정 등을 거치면서 이러한 알레고리에 대한 숭배는 한풀 꺾였고, 혁명세력은 개인적 차원에서, 혹은 비밀리에 '공화국'을 모시게 되었다. 이러한 숭배가 다시 표면으로 떠올라 공식화된 것은 보불전쟁과 파리 코뮌을 거쳐 제3공화국이 성립하고 그 정치적 기반이 튼튼해진 19세기 말에 이르러서라고 할 수 있다. 본서는 간단히 혁명의 경과와 여성 알레고리의 채택 이유에 대해 고찰한 뒤, 이 제3공화국 성립 전후의 시기를 배경으로 어떻게 개인의 벽장이나 창고로 쫓겨났던 '공화국'이 다시 공공장소로 돌아오게 되었는가를 밝히고 있다.

그러면 '마리안느'라는 애칭은 어디서 온 것일까? 거기에 대해선 별도의 고찰이 전개되는데, 적어도 역사적으로 보면 제2공화국 말기에 있었던 반체제적 비밀결사의 이름 혹은 암호에서 온 것으로 보고 있다. 그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결국 가장 유력한 설은 '가장 평범하고 민중적인 이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고, 원래는 '공화국'에 대한 경멸적인 호칭으로 사용되던 것을 후에 혁명세력에서 받아들여 경애의 의미로 쓰게 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다만 저자는 이에 대해 좀 다른 견해를 제기하고 있어서 흥미롭다)

제3공화국 이후에는 이 상징을 둘러싼 투쟁이 두 가지 다른 위상에서 전개된다. 하나는 그때까지 남아있던 반혁명파(왕당파)와 혁명파의 투쟁으로, 반혁명파는 '공화국'에 대항하기 위해 왕정의 수호자이자 구국의 영웅인 잔 다르크를 부활시킨다. (축제나 회화 등의 매체를 통하여) 그에 비해 또 다른 투쟁은 혁명파 내부에서 진행된 것인데, 부르주아의 이익을 대변하고 극단적인 개혁을 자제하는 우파(보수파)는 보다 얌전하고 권위적이며 차분한 어머니의 이미지를 지닌 '자유의 여신'을 (나중에 미국에 선물하는 자유의 여신상은 바로 이 상징을 거대화[?]시킨 것이다),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고 현상에 만족하지 않는 좌파(급진파)는 보다 격렬하고 친근하며 열정적인 젊은 여인의 이미지를 지닌 '마리안느'를 내세워 부딪히게 되는 것이다. 본서는 일단 이러한 '두 얼굴의 승리'까지만을 다루고 나머지에 대해서는 또 다른 연구를 통해 보충할 것을 약속하면서 끝을 맺는다. (참고로 제5공화국 이후 공화정이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당연한 것이 되면서 이러한 여성 알레고리는 점차 공식석상에서 자취를 감추고 팬시상품으로 세속화된다)

이미지와 상징, 풍속과 예술이 정치나 사회의 움직임과 결코 무관하지 않고 같이 보조를 맞추어, 혹은 서로 충돌하면서 역동적으로 전개된다는 것을 재미나고 다채롭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꽤 읽어볼 만한 책이다.

(...라지만 사실 모 교양과목 참고문헌으로 읽은건데 정작 시험 때는 시간에 쫓겨 책 자체의 내용은 10%도 쓰지 못했다...닐니리야~ -_-)

최근에 끄적거린 모 단편의 등장인물 '마리아노'는 여기서 힌트를 얻은 작명.
by 잠본이 | 2003/12/22 12:22 | 대영도서관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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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rumic71 at 2003/12/22 12:44
모출판사 사무실의 캐비닛에 '愛兄弟' 라는 낙서가 되어 있어서 한동안 경악의 대상이 되었던 기억이 나는군요.
Commented by 천년용왕 at 2003/12/22 14:45
뭔가 기분은 라 세느의 별... (펑)
Commented by rumic71 at 2003/12/23 00:10
라 세느의 별은 당통이 요만한 꼬마녀석이던 때니까 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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