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소년 아톰 2003
01 |
02 |
03 |
04 |
05 |
06 |
07 |
08탄생설화라고 하니까 무슨 고전문학 이야기같지만 그런건 아니고...
역사가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오랜 세월동안 끊임없이 시대에 맞춰 변해가며 생명을 유지해 온 롱셀러 캐릭터들은 때때로 그 원점을 다시한번 환기하기 위해 캐릭터의 탄생을 반복적으로 되짚어보는 경향이 있다. 그런 과정에서 원래는 같은 캐릭터임에도 설정이 미묘하게 바뀌거나, 비슷한 삶을 살게 될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결과에 이르는 과정이 전혀 다르거나 하는 경우가 생겨난다.
이런 이벤트가 반복되면서 결국 하나의 캐릭터가 '여러개의 서로 다른 탄생설화'를 지니게 되는 별난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들을 모두 패러렐 월드로서 인정할 것인지 아니면 그중에 마음에 드는 것만 골라서 알고 있던지 그건 작품을 소비하는 여러분들이 알아서 결정할 일이다)
이 자리에서는 요즘 신작의 방영으로 화제가 되고 있(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철완 아톰을 예로 들어서 설명해 보고자 한다. 널리 알려진(것 같지도 않은) 바대로,
아톰은 과학성장관 텐마박사가 사고로 죽은 아들 토비오 대신에 만들어낸 인간형 로봇으로, 텐마에게 버림받은 뒤 후임 장관 오챠노미즈에게 길러지며, 아톰이란 이름으로 활약하게 된다. 여기까지는 거의 모든 버전이 똑같다. 즉 이 부분은 아무리 바꾸더라도 결코 건드려서는 안 되는 본질적인 골격에 해당한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이 골격 외의 다른 부분은, 여태까지 끊임없이 수정되고 재조립되고 갱신되어 왔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아톰은 물건너에서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에 잡지 '소년'에 처음 등장했다. 작가 테즈카 오사무는 원래 '아톰대륙'이라는 미래과학도시를 배경으로 한 SF를 그리려고 했으나, 편집부에서 '주인공의 이름이 타이틀에 안 들어가면 곤란하다'고 하여 급거 아톰이란 이름의 로봇이 등장하는 스토리로 바꾸었다. 그것이 바로 '철완 아톰'의 프로토타입이 된
'아톰 대사'였다.
현재는 공식적으로 모든 아톰관련 전집에서 '제1화' 취급을 받고 있지만, 사실 이 작품은 세계관상으로 '철완 아톰'과 이어지지 않는 독립된 작품이고,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톰인 것도 아니다. 본작은 지구의 대파국을 피하여 우주선을 타고 탈출한 지구인들이 패러렐 월드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지구'에 도착하여 그곳 사람들과 어울려 살다가 식량문제로 갈등을 빚게 되어 급기야는 전쟁상태에 돌입한다는, 테즈카의 초기 SF 삼부작(
로스트 월드,
메트로폴리스,
다가올 세계)을 연상시키는 대하드라마이다. (실제 분량은 책 한권도 안 되지만;;;) 원래의 지구인과 또 하나의 지구인들은 외모면에서 쌍둥이처럼 똑같은 사람이 1명당 하나씩 존재한다. 유일한 차이점은 한쪽이 삼국지의 유비처럼 귀가 크다는 정도이다.
우수한 과학자인 텐마 박사는 귀여워하던 친자식 토비오가 사고로 죽자 과학의 힘으로 자식을 되살리려고 시도한 끝에 로봇 토비오를 만든다. 그러나 박사는 시간이 흐르면서 이 토비오가 성장하지 못한다는 결점을 깨닫고 화가 나서 서커스단에 팔아버린다. 여기까지는 이후에 익숙해진 아톰의 탄생설화와 기본적으로 유사하다.
다만 다른 점이라면 토비오를 사들인 서커스단장이 햄에그가 아니라 무슈 앙페르(!)였다는 점 정도이다. (햄에그와는 달리 아톰을 적어도 겉으로는 학대하지 않고 세련되게 다룬다)
'아톰 대사'의 스토리는 전적으로 평범한 소년
타마오(!)와 그 친구
켄이치, 담임인
수염아저씨 등에 맞춰져 있으며 아톰은 거의 중반이 가서야 등장하고 거의 조연에 머무른다. 다만 클라이막스에서 거의 전면전쟁이 일어나려 할 때 지구인도 또 하나의 지구인도 아닌 중립적인 입장의 사절로서 아톰이 파견되어 양측의 협상을 이끌어낸다는 점에서는 꽤 중요한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 작품은 이후 설정을 약간 바꾸어 흑백 TV판의 에피소드로도 만들어졌다. 서브타이틀은 똑같은 '아톰 대사'.)
위의 줄거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테즈카는 본래 '아톰 대사'를 1회용 장편 스토리로 끝낼 작정이었다. 그러나 의외로 조연인 아톰이 인기를 끌게 되자 설정을 대폭 개정하여
'철완[무쇠팔] 아톰'이란 제목으로 장기연재하기에 이른 것이었다. (원래 예고에는 '철인 아톰'이었으나 실제 연재시에 바뀌었는데, 이는 아무래도 이미지가 너무 험악하게 될 것을 우려한 작가 자신의 의도였던 것 같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후 '소년'지에서 본작과 인기를 양분한 라이벌 작품이 바로
요코야마 미츠테루의
'철인 28호'였다.)
제2화(실질적으로는 제1화)인 '기체인간'편으로 스타트를 끊은 '철완 아톰'은 이후 수년간 아톰의 탄생에 대해서는 독자들도 이미 알 것이라 전제하고 거기에 대해서는 전혀 건드리지 않은 채 아톰과 오챠노미즈 박사, 수염아저씨, 반 친구들의 모험을 현재진행형으로 끌고 나간다. 아톰의 탄생 이야기는 별도의 에피소드가 아닌 중간중간의 회상을 통해 잠깐씩만 소개된다. (마치
'스파이더맨'(1994)에서 피터가 왜 스파이더맨이 되었는가를 회상으로만 보여주듯)
중반 에피소드 중 하나인 '이집트 음모단의 비밀'에서 간만에 텐마박사가 등장하여 클레오파트라에게 아톰과 자기의 사연을 얘기하는 부분이 있다. 여기서 그는
"난 예전에 '붉은 셔츠단'을 조직하여 우주에서 온 사람들을 먼지로 만들려고 했었다. 그러나 아톰은 나를 한사코 말렸고 나는 듣지 않았지. 결국 아톰은 날 상대로 싸우기 시작했다."라고 진술한다.
처음 듣는 소린데? 라고 이상하게 여기실 분도 계시겠지만 사실 이것은 현재의 아톰 스토리가 아닌 '아톰 대사'에서 나온 이야기를 그대로 하고 있는 것이다. 즉 이때까지만 해도 작가는 이 이야기를 그대로 아톰 탄생설화의 일부로 인정하고 있었다고 추측해 볼 수 있다.
(다만 의문인 것은, '아톰 대사'에서 텐마박사는 자기가 만든 인체축소액 때문에 죽는 걸로 나온다는 사실이다. 즉 설정은 따왔으나 스토리상 연결되지는 않기 때문에 골치가 아파진다)
(C) ZAMBONY 2003.12.18.→다음 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