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Baron Munchausen
저자: 루돌프 에리히 라스페
출판사: 황금가지
어린 시절에, 세계명작이라는 기만적이기 짝이 없는 타이틀을 달고 출판된 식민주의자들의 잡다구리 문학전집에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며 유럽 각국은 물론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급기야는 달에까지 넘어가서 별별 황당스틱한 닭짓을 보여주는
뮌히하우젠 남작의
택도 없는 모험담을 찾아서 읽어본 사람은 결코 적지 않으리라 여겨진다. (그러니 이렇게 완역본도 나오는 거겠지만...)
황당하다못해 허탈해지는 그 모험을 영상으로 옮기려는 시도도 많았다. (제일 마이너한 걸로는
레이 해리하우젠의 스톱모션 애니 프로젝트가 있으나... 이놈은 테스트샷만 찍고 결국 기획이 무산되었다고 한다.)
일반상식과 물리법칙을 완벽하게 무시해버리고 엄청 희한한 풍경과 말도 안되는 나라들을 묘사하면서, 결국에는 자기 잘난 맛에 모든 걸 다 해결해 버린다는 식으로 끝내는 게
이 작품 내에서 계속 반복되는 패턴인데, 이제 와서 다시 이 고약스런 물건을 하나하나 읽어나가자니 머리에 쥐가 나고 심장에는 털이 나서 견딜 수가 없을 지경이다. 이 건방떠는 남작놈이 내 눈앞에 있었다면 당장에 이야기 속에 나왔던 치즈 섬의 나무에다 목아지를 매달아버렸을 거다. (읽다 보면 그 정도로 열받는다)
이것이 과연 이 텍스트 속에 교묘하게 감춰진...것도 아니고 아주 노골적으로 드러난 귀족연하는 태도와 유럽제일주의에 더하여 인종차별(유색인은 노예로밖에 안 나온다) 패륜망덕(남작이 싫어하는 인물은 100% 흑색선전의 제물이 된다) 상식무시(자기가 하는 말이 믿어지지 않는다면 그건 그사람이 잘못된 거란다)의 퍼레이드에 열이 뻗쳐서인지 아니면 내가 나이를 먹은 탓에 마음보가 좁아져서 황당한 이야기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어서인지 그건 잘 모르겠다. (혹은 이야기 자체가 너무 따분하고 재미없게 느껴져서일지도 모르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이렇게 많은 이야기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황당무계한 스타일로 풀어놓는 것도 사실 재주는 재주다 -_-)
하여튼 분명한 건 내게는 이 라스페 버전보다는 테리 길리엄이 자기 걸로 각색해버린
영화판 뮌히하우젠 쪽이 훨씬 매력적이라는 점이다. (하기야 이쪽은 거의 골격만 가져오고 주제 자체가 바뀌기 때문에... 영화판의 주제가 뭐냐면...한마디로 설명할수는 없지만 거의 밍키모모 최종회와 비슷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이 아까워서 끝까지 읽고 나니, 이것보다 이후의 판본이자 더 유명한 버전인 뷔르거 판이나, 그 뒤의 다른 작가들이 쓴 뮌히하우젠 상도 심히 궁금해지지만...(적어도 이쪽보다는 재미있을 듯한...) 이제 와서 찾아볼 방법은 없겠고. 언제 테리 길리엄 영화나 다시 볼 수 있으면 봐야겠다... 어화둥둥.
내가 일전에 끄적인 썰렁한 단편
'허풍선이 남작의 탄생'을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나로서는 도저히 이 열뻗치는 라스페 버전을 따라할 자신도 의지도 없었기 때문에 거기에는 이야기의 모델이 되었다는
실존인물 뮌히하우젠의 소년시절을 잠깐 내비치는 걸로 끝난다. (어차피 본론은
생백작의 모험이 될 거기 때문에...허풍선이 남작 리메이크를 기대하신 분께는 죄송하지만;;) 이후 월폴이 등장하는 2편을 거쳐 라스페가 백작을 만나 봉변당하는 완결편을 쓸 생각이긴 한데... 지금은 사정이 좀 뭐시기하여 언제 나올지는 며느리도 모르고 황금박쥐도 모른다는...(풀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