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본? 성은요?' '그냥 잠본이야. 그를 아는 사람들은 포털 잠본이라고도 부르지만.' '포털... 잠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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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스티지 (원작판)
원제: The Prestige
저자: 크리스토퍼 프리스트
역자: 안종설
출판사: 북@북스

앤드류 웨스틀리는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젊은이다. 어릴 때 입양되었지만 양부모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으며 잘 자라났고, 현재는 신문 기자가 되어 다소 피곤하긴 하지만 큰 불만 없는 삶을 꾸려나가고 있다. 단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계속해서 그의 마음 속에 자기의 존재를 속삭이는 '잃어버린 쌍둥이 형제'에 대한 것뿐. 그러나 입양 당시의 기록을 아무리 뒤져봐도 그에게는 형제가 없었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희미한 느낌만 갖고는 어떤 것도 주장할 수가 없는 법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종교 집단을 취재하러 가던 중 신원을 알 수 없는 누군가가 보내 온 책을 보게 된다. 그 책의 이름은 <마술 비법>. 그의 증조부이자 마술사였던 알프레드 보든이 쓴 책이었다. 취재 장소에 도착한 앤드류는 제보자인 캐서린 앤지어(애칭 케이트)를 만나, 그녀가 자신을 부른 용건은 사실 다른 데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캐서린의 증조부 루퍼트 앤지어 또한 당대의 유명한 마술사였으며 알프레드 보든과 앙숙이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캐서린이 어렸을 때 목격한 기분나쁜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기 시작하고, 그 과정에서 보든과 앤지어의 평생에 걸친 대결과 그 이면에 얽힌 어두운 비밀이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내는데...

영국의 작가 크리스토퍼 프리스트가 1995년에 발표한 매직 판타지 소설. 전 5부 구성으로 되어 있는데, 첫 번째 파트에서는 앤드류를 화자로 하여 그의 '쌍둥이'에 대한 기묘한 감각과 케이트와의 만남을 다루고, 두 번째 파트에서는 알프레드 보든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그와 앤지어의 대결에 대한 대체적인 상황을 제시하며, 세 번째 파트에서는 케이트를 화자로 하여 그녀가 어렸을 때 목격한 끔찍한 사건(앤드류의 '쌍둥이'와 관련이 있는)을 얘기하고, 네 번째 파트에서는 루퍼트 앤지어의 일기 형식으로 그와 보든 사이에 실제로 어떠한 일이 있었는가, 그리고 현재에까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앤지어 가문의 비밀은 어떤 것인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밝혀진다. 마지막 제5부에서는 다시 현재로 돌아와, 전지적 시점으로 앤드류와 케이트가 직면하는 '비밀'의 실체를 알려주고, 모든 사태를 지켜보고 있었던 '그 사람'의 퇴장과 함께 마무리를 짓는다.

최고의 자리를 놓고 서로 다투는 두 마술사의 대결을 소재로, 완벽한 경지에 대한 열망과 증오스런 상대에 대한 복수심이 점점 극한까지 치달아 당사자들의 인생과 인간성 그 자체까지 파괴해버리는 섬뜩한 과정을 박진감 있게 그려내고 있다. 충실하게 재현된 빅토리아 시대의 생활상이라던가 현재까지 신비와 의혹에 싸여 있는 괴짜 과학자 니콜라 테슬라의 발명품 등등 독자의 흥미를 끌 만한 요소도 군데군데 잘 배치되어 있다. 다만 이야기의 무게중심은 어디까지나 두 마술사(그 중에서도 특히 앤지어)에게 놓여 있기 때문에 후손들의 이야기는 본편을 꾸며주기 위한 액자에 머물고 있으며, 결말 부분도 특히 중요한 수수께끼를 순식간에 확 밝혀버린 뒤에 뜬금없이 팍 끝내버리는 느낌이 강해서 '이게 끝이야?'라는 불평이 절로 나온다는 게 문제다. 한국어 번역판은 그런대로 읽기 쉽게 잘 번역되어 있으나 교정을 제대로 안 한 건지 군데군데 오/탈자가 눈에 띄어 읽는 즐거움을 시시각각 방해하고 있다는 점도 아쉽다. 소설 원서 표지와 영화 포스터 등을 짜깁기하여 산만한 인상을 주는 표지 디자인도 마음에 안 든다.

본 작품은 최근에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에 의해 극장용 장편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원작과 영화를 비교해 보는 것도 꽤 재미있을 듯하여 몇 군데 눈에 띄는 점만 정리해 보고자 한다. (사실 소설 자체만으로 보면 좀 미흡한 점도 많기 때문에 영화도 함께 보고 나서 두 버전을 상호보완적으로 즐기는 편이 훨씬 즐거우리라 생각한다.)

(( 소설 및 영화판에 대한 심각한 내용 누설이 있으므로 아직 못 보신 분은 아래를 읽지 마시기 바랍니다. ))

*소설의 두 주인공과 영화의 두 주인공은 이름과 대체적인 배경은 비슷하나 성격이나 기질이 미묘하게 다르다. 특히 소설에서 앤지어의 이름은 루퍼트 데이비드 앤지어(애칭 로비)이지만, 영화에서는 로버트 앤지어로 바뀌었다.

*소설은 이미 밝힌 바와 같이 보든과 앤지어의 후손들 이야기에서 출발하여 두 사람의 과거 이야기를 차례로 보여준 뒤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이에 비해 영화는 여기서 후손들 이야기를 과감하게 잘라내고 19세기말 영국을 무대로 보든과 앤지어의 이야기를 '현재' 시점에서 다루고 있다. 또한 소설에서는 보든의 (지리멸렬하고 디테일도 대충대충인) 회상록이 먼저 제시된 뒤 앤지어의 (엄청 자세하고 날짜별로 정리도 칼같이 된) 일기를 통해 당시의 상황을 보완하고 있지만, 영화에서는 앤지어의 살인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보든이 앤지어의 일기를 읽고, 그 일기 속에서 또 앤지어가 보든으로부터 훔쳐낸 기록을 읽는 식으로 과거와 현재를 왔다갔다하며 두 명의 과거 이야기를 스릴 넘치게 풀어나가고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영화 쪽이 훨씬 촘촘하고 밀도 있게 구성되어 있으나, 자세한 설정이나 디테일은 소설 쪽이 더 풍부하다.

*소설에서는 보든과 앤지어의 출생이나 집안 배경, 어린시절 이야기 등이 상당히 자세하게 나온다. 보든은 해스팅스에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수레바퀴나 가구를 만드는 일을 배웠고(이때 배운 기술이 나중에 '캐비닛에서 사람 꺼내기' 마술을 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아버지의 작업장에 드나들던 뜨내기 일꾼으로부터 카드 마술을 배운 것을 계기로 마술의 세계에 입문한다. 어느날 사고로 손가락을 크게 다친 보든은 상처가 나은 후에 위험한 목수 일보다 마술이 훨씬 매력적이라 생각하여 결국 집을 떠나서 마술사로 개업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영화에서도 보든이 전혀 다른 상황에서 손가락을 다치는 장면이 나오고, 이것이 전체적인 트릭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앤지어는 더비셔에서 명문 귀족 콜더데일 경의 둘째아들로 태어나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나 큰형 헨리와 사이가 안 좋아서 항상 집을 떠날 궁리만 하고 있었다. 앤지어가 마술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어느 날 집에서 열린 파티에 참석한 마술사가 온갖 휘황찬란한 재주를 보여준 이후인데, 너무나도 마술을 배우고 싶었던 앤지어는 충직한 집사 그리어슨의 도움으로 관련 서적과 도구를 구하여 독학을 하고, 결국 아버지의 죽음과 헨리의 작위 승계 이후 집에 있을 이유가 없어지자 런던으로 올라와 마술사로서 자립한다. 영화에서도 보든은 노동계급 출신, 앤지어는 귀족 출신이란 설정은 그대로 남아 있으나 이들의 어린 시절이나 마술에 입문한 계기 등은 생략되어 있다.

*소설에서 보든과 앤지어는 처음부터 아는 사이가 아니었고 동료인 적도 없었으나 영화에서는 마술사의 조수로 일하면서 솜씨를 배우던 시절부터 절친한 친구로 설정되어 있다. 보든이 앤지어에게 원한을 사는 이유도 서로 다른데, 소설에서는 가난에 못이겨 엉터리 강령술을 벌이는 앤지어를 사기꾼으로 생각한 보든이 그 자리에 끼여들어 방해하다가 당시 임신 중이던 앤지어의 아내 줄리아를 실수로 떠밀어 그녀를 유산시켰기 때문이다(물론 보든은 이 사실을 평생 알지 못한다). 이에 비해 영화에서는 앤지어의 동료로서 함께 일하던 보든이 수중 탈출 묘기를 벌이는 줄리아의 팔다리를 평소와 다른 매듭으로 묶는 바람에 그녀가 탈출하지 못하여 익사했기 때문인 것으로 그려져 있다.
(즉 소설에서는 줄리아가 죽지 않으며, 이후 앤지어와의 사이에서 애를 셋씩이나 더 낳는다. 영화에서는 줄리아가 죽은 뒤 앤지어는 평생 독신으로 지낸다. 앤지어의 예명 '그레이트 당통'의 기원도 소설에서는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지만, 영화에서는 줄리아가 생전에 제안한 것을 앤지어가 그녀를 기리기 위해 사용하는 것으로 나온다. 소설에서 줄리아의 처녀적 이름은 '줄리아 펜셀'이지만 영화에서는 '줄리아 맥컬로'로 설정되어 있다.)

*소설에서 보든과 앤지어가 서로를 방해하는 과정은 상당히 간접적이고 찌질하게 그려진다. 상대방이 공연을 할 때 몰래 숨어들어 도구를 망가뜨리거나 관객을 가장하여 무대에 올라가서 트릭을 폭로하거나 미리 적어둔 문구를 전혀 엉뚱한 것으로 바꿔놓거나 하는 정도다. (그러나 사실 비밀이 생명인 마술사 입장에서는 이것만 해도 무지 치명적이다.) 물론 후반으로 가면 보든의 방해공작으로 앤지어가 수중탈출 묘기를 하다가 죽을 뻔 하는 등(이 장면은 영화에서 묘사된 줄리아의 죽음에 영향을 준 듯 하다), 목숨을 위협할 정도로 에스컬레이트되는 점은 유사하다.
영화에서는 아무래도 보든과 앤지어의 사이가 벌어진 이유가 더 처절한 덕분에 그에 이어지는 대결도 상당히 극단적이고 살벌하다. 보든이 총알 잡기 마술을 하는데 쳐들어온 앤지어가 실탄을 총에 넣고 쏘는 바람에 보든이 손가락에 치명상을 입기도 하고(아이러니하게도 후일 앤지어는 이점을 역이용한 보든에게 걸려들어 그의 트릭을 간파하지 못하고 간과하는 실수를 하게 된다), 앤지어가 특수장치를 한 새장을 이용하여 새를 사라지게 하는 마술을 선보이는 자리에 보든이 끼여들어 훼방을 놓는 바람에 자원자로 올라온 노부인의 손가락이 잘리는 끔찍한 사고가 생기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들이 점점 쌓이고 쌓여서 막판의 대파국(소설에서는 이런 직접적인 대치 장면이 아예 나오지 않는다)에 이르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영화가 어디에 중점을 두고 있는지가 확연히 드러난다.

*영화에서 보든과 앤지어 사이를 오가며 온갖 트릭을 제공하고 공연을 보조하며 결정적인 대사를 내뱉는 중요 캐릭터인 해리 커터. 분명 소설에도 해리 커터라는 인물이 등장하기는 하나 비중은 엄청나게 낮다. 앤지어의 조수로 잠깐동안 일했고 보든이 대역을 쓰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충고한다는 점을 빼면 영화와 전혀 관련없는 인물이다. 소설에서의 커터는 앤지어가 올리비아에게 홀딱 빠져 가족과 멀어지는 것을 보고 열받아서 앤지어의 곁을 떠나버리고, 결국 두 번 다시 등장하지 않는다.

*주요 여성 캐릭터 중 한 명인 올리비아의 설정도 소설과 영화가 약간씩 다르다. 소설에서는 본명이 '올리비아 스벤슨'으로, 미국에 순회공연차 건너간 앤지어와 사랑에 빠져서 그의 조수로 취직하여 영국으로 건너온 것으로 되어 있다. 앤지어와 올리비아의 애정관계는 상당히 깊고 끈끈한 것으로 묘사되며, 그 때문에 본처 줄리아나 조수 해리 커터도 앤지어에게 실망하여 그의 곁을 떠난다. (줄리아는 나중에 앤지어와 화해하고 재결합한다.) 보든에 대한 앤지어의 집착이 점점 깊어지는 것을 못이긴 올리비아는 스스로 보든의 조수로 들어가서 그의 비밀을 훔쳐오겠다고 자처하고, 앤지어는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허락하지만 계속해서 '그녀가 자기를 떠나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시달린다. 올리비아는 '올리브 웬스콤'이란 가명을 써서 보든의 조수로 들어가고, 곧 그와 연인관계가 된다. 결국 보든에게 정체를 들킨 올리비아는 앤지어와 결별하는 대신 보든의 '순간이동' 마술을 해명하는 키워드를 받아내는 데 성공한다. 앤지어가 쓰라린 심정으로 받아든 그 키워드의 내용은 바로 '테슬라'였다.
영화에서도 같은 캐릭터가 나오지만 이름은 '올리비아 웬스콤'이고(소설에서 올리비아가 사용하던 두 가지 이름을 하나로 합쳤다) 줄리아가 이미 죽은 뒤이기 때문에 앤지어와 그녀가 애인이 되어도 별다른 문제는 생기지 않으며, 그녀를 보든에게 스파이로 보내는 것도 앤지어의 아이디어인 것으로 바뀌었다. 보든은 처음부터 그녀가 스파이라는 것을 알아채고 그녀와 사귀게 되며, '테슬라'라는 키워드를 얻어내는 과정도 올리비아와는 상관없는 것으로 바뀌었다(앤지어가 보든의 조수 팔론을 납치, 보든을 협박함으로써 알아낸다. 물론 이에 따르는 팔론의 생매장 이벤트도 영화 오리지널). 대신 올리비아는 보든에게 완전히 돌아서기 전에 그의 일기를 훔쳐와 앤지어에게 건네준다. 그러나 그 일기의 내용은 앤지어를 혼란시키기 위해 보든이 날조해둔 것이었다(소설에서는 보든[혹은 두명의 보든 중 한명]이 죽은 뒤 돈이 궁해진 올리비아가 일기를 팔아넘기는 걸로 나오며, 당연히 보든은 이 일기가 앤지어의 손에 들어가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으므로 일부러 날조한 부분도 없다. 앤지어는 후에 이 일기를 보완하여 단행본으로 출판하는데, 소설 첫머리에서 앤드류가 읽는 <마술 비법>이 바로 그 책이다).

*소설에서는 앤지어의 여자관계가 상당히 복잡한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줄리아와 결혼하기 전에도 드루실라 맥아보이라는 여자와 며칠간 사귄 전적이 있고, 줄리아와 별거하고 올리비아와 같이 살 때도 세일라 맥퍼슨이라는 여성과 자주 만나 올리비아의 질투를 자아내기도 한다(눈치 빠른 보든이 이 사실을 편지로 써서 올리비아가 사는 집으로 부쳤기 때문에 앤지어의 입장이 더욱 곤란해졌다). 이에 비해 영화의 앤지어는 오로지 줄리아에게만 충실했고, 그녀가 죽고 나서 올리비아와 활동을 같이하게 된 뒤에도 그녀에게 마음을 열어보인 적이 없었던 것으로 묘사된다(올리비아는 앤지어가 죽은 아내에 대해 항상 입을 꼭 다물고 있는 걸 못마땅하게 여긴다). 앤지어를 연기한 휴 잭맨의 이미지를 생각해 보면 이쪽이 확실히 더 어울리는 설정이긴 하다(...라기보단 러닝타임 관계로 쓸데없는 캐릭터를 더 집어넣을 여유가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소설에서는 보든이 이미 마술사로 개업한 후에 자선 공연에 참석했다가 새라를 만나 결혼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영화에서는 아직 견습생 시절의 보든이 조카를 데리고 마술 공연을 보러 온 새라를 만나 꼬시는 걸로 바뀌었다(이때 조카녀석이 외치는 '불쌍한 새가 죽었어!'라는 대사가 의외로 후반 내용에 대한 중요한 복선이 된다). 또한 소설에서는 보든과 새라 사이에 쌍둥이 남매가 태어나는 것으로 나오지만 영화에서는 딸래미 하나 뿐이다.

*앤지어가 보든의 순간이동 마술을 베끼기 위해 채용한 대역이 바로 제랄드 루트라는 술주정뱅이 연극배우. 소설에서도 루트는 등장하지만 영화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는 않는다. 소설에서는 기술적으로 무너뜨린 캐비닛 벽판 아래에 진짜 앤지어가 엉거주춤 엎드려서 숨어있는 사이에 루트가 다른 캐비닛에서 나와서 박수갈채를 받지만, 영화에서는 무대 아래쪽의 비밀문으로 앤지어가 떨어지고 루트가 반대쪽 캐비닛에서 나오는 걸로 미묘하게 바뀌었다(사실상 테슬라 기계를 이용하게 된 뒤에도 근본적인 트릭 자체는 바뀌지 않는 셈이다). 소설에서는 루트가 계속 급료를 올려달라며 협박을 해서 앤지어가 위기감을 느끼던 차에 보든이 해외로 잠시 나가자 더이상 순간이동 마술을 선보일 필요가 없어져 주저없이 루트를 해고하는 걸로 나온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앤지어의 트릭을 일찌감치 파악한 보든이 루트에게 접근하여 앤지어에게 반항하도록 꼬드기고, 앤지어는 그 덕에 상당한 타격을 입은 뒤에야 루트와 결별한다는 식으로 보다 극적인 전개를 보여준다. 참고로 영화에서의 루트는 앤지어 역의 휴 잭맨 본인이 1인 2역을 맡아 연기했다. (베일의 보든과는 정반대 경우랄까 뭐랄까)

*소설에서는 앤지어가 미국 콜로라도주로 건너가서 테슬라를 만나기까지의 여정이 꽤 자세하게 들어가 있으나(중요한 것은 하나도 빼놓지 않고 일기를 꼬박꼬박 쓰는 앤지어의 꼬장꼬장한 성격 탓인 듯), 영화에서는 그냥 기차타고 눈덮인 산들 사이를 지나 어딘가로 가는 정도로 생략되었다. 앤지어가 마을에 도착한 뒤 그를 실어다주는 마부와의 대화도 꽤 길게 나오지만(앤지어는 이상한 눈길을 피하기 위해 금광을 찾으러 왔다고 둘러댄다), 영화에서는 별로 중요한 장면이 아니라서 다 삭제되었다.

*테슬라 장치의 실험 과정이나 그것이 앤지어의 손에 넘어오는 과정도 약간씩 다르다. 소설에서는 오렌지색으로 칠한 쇠막대를 가지고 실험을 하지만 영화에서는 앤지어의 실크햇으로 바뀌었다(덕분에 관객들은 눈밭에 흩어져 있는 무수한 복제 실크햇들의 향연이라는 꽤나 낭만적인 광경을 보게 되었다). 그 뒤에는 바퀴벌레를 가지고 실험을 계속하지만 영화에서는 이 과정이 생략된 채 고양이를 전송하는 실험으로 바로 넘어간다(소설에서는 고양이를 가지고 실험하는 장면은 직접적으로 나오지 않으며 나중에 테슬라의 조수 앨리의 편지를 통해 간단히 언급될 뿐이다). 이후 소설에서는 앤지어가 형의 죽음으로 작위를 물려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영국으로 돌아가게 되어 나중에 테슬라가 잠적하면서 그 기계를 우편으로 보내주는 식으로 전개되지만, 영화에서는 에디슨 일파의 방해공작을 피해 테슬라가 먼저 달아나면서 앤지어에게 그 기계를 남기는 식으로 바뀌었다(영화에서는 앤지어의 작위 계승 이벤트가 전혀 나오지 않기 때문에 나중에 그가 '콜드로 경'으로서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부분이 좀 뜬금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소설에서는 형이 죽은 뒤 백작이 되어 영지를 상속한 앤지어가 보든과의 아집에 진절머리가 난 나머지 마술을 그만두고 조용히 살아갈까 고민하지만 형이 남겨놓은 빚 문제와 재결합한 아내 줄리아의 애원 때문에 결국 마술계로 돌아오는 장면이 있다. 영화에서는 상속 문제도 묘사되지 않고 줄리아도 이미 죽은 뒤이며 보든에 대한 앤지어의 집착도 훨씬 강력하고 병적인 것으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상황 자체가 나오지 않는다.

*소설과 영화의 가장 큰 차이점이자 결말의 내용을 완전히 달라지게 만드는 요소로서 작용하는 것이 바로 테슬라 기계의 효과이다. 소설에서는 원본을 일단 분자 레벨로 분해하여 지정된 장소에 재조립하지만, 그 과정에서 원본이 있던 자리에는 아무런 생명이 없는 '차가운 껍데기'만이 남게 된다(원본과 형태상으로는 완전히 동일하나 생명반응이 전혀 없고 시간이 지나도 부패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앤지어는 순간이동 묘기를 선보이면서 원래 자기가 있던 자리에 남는 잔존물(작품 내에서 앤지어 본인은 이 물체를 비웃음섞인 어조로 '프레스티지'라고 칭한다. 다만 영화에서는 테슬라 기계의 설정이 180도 달라지기 때문에 '프레스티지'라는 단어의 의미에도 이런 뜻은 들어가지 않는다.)을 무대 아래로 몰래 떨어뜨리고는 공연이 끝난 뒤 집사 그리어슨의 도움을 얻어 가족 납골당에 안치하는 삽질을 해야만 했다. 결국 이 '잔존물'들은 이야기 막바지에서 앤드류의 눈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순간이동 당시의 포즈 그대로 '얼어붙은' 수많은 앤지어의 화석들이 꼼꼼하게 일련번호까지 붙어서 질서정연히 누워있는 광경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엽기다. 어찌보면 너무나 '영국적'인 엽기랄까).
그러나 영화에서는 기계의 효과가 전혀 달라진다. 원본과 정신적, 육체적으로 완전히 동일한 '살아있는 복제물'이 지정된 장소에 나타나기 때문이다(아니면 원본이 지정된 장소에 전송되고 원본이 있던 자리에 복제가 나타났다고 해석할 수도 있으나 이미 둘이 실질적으로 차이가 없는 상황이니 이렇게 따지는 것도 별로 의미가 없다). 그 때문에 앤지어는 공연할 때마다 '자기 자신을 죽이고 새로 태어나는' 괴로운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에 처한다. 원본은 비밀문을 통해 무대 아래편의 물탱크로 떨어져 익사하고 관객석 뒤에 짜자잔 하고 나타난 복제본이 원본의 자리를 차지하여 앤지어의 인생을 이어가는 것이다. 이 설정은 완벽한 마술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해 온 앤지어가 결국 스스로를 죽이는 지경에까지 이른다는 비참함을 극대화시키는 동시에, 앞서 극중에서 제시되었던 '테이블 위의 새 없애기' 마술과 이미지상 완벽하게 싱크로되어 관객에게 '아, 그래서 이 장면이 나온건가!'라는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게 된다. 이 설정은 소설과 전혀 관계없는 영화만의 오리지널 해석이며, 이 부분에서 소설과 영화가 결정적으로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동인적 관점에선 저런 복잡한 뒷얘기 다 필요없고 그냥 '완벽하게 살아있는 101명의 휴잭맨을 복제한다는 환상을 심어주어 여심을 붙들기 위한 놀란감독의 고도의 술수닷!'이라고 해도 뭐 할말 없지만 OTL;;;;;)

*보든의 순간이동 마술은 소설와 영화에 모두 등장하나, 소설에서는 더 극적이고 화려한 효과를 원한 보든이 여러 가지 다른 설정을 실험해 가는 과정이 묘사된다. 결국 결정판에서는 아예 캐비닛이 자취를 감추고 미친 과학자의 실험실을 연상시키는 기계장치로 둘러싸인 긴 의자에 누운 보든이 엄청난 섬광과 함께 관객들의 눈이 먼 사이 이동한다는 식으로 나온다(영화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두 개의 캐비닛을 이용한 고전적인 스타일로 밀고 나간다). 보든이 이 무대장치를 고안해낸 것은 마침 런던에서 벌어진 테슬라의 전기장치 시연회를 구경한 직후의 일이다. 따라서 보든이 앤지어에게 넘겨준 '테슬라'라는 키워드가 훨씬 더 설득력을 갖게 된다(어차피 뻥인 건 영화나 소설이나 마찬가지였지만). 공연의 제목도, 소설에서는 보든이 '순간이동 남자'와 이를 개량한 '신 순간이동 남자'를 선보이고 나중에 앤지어가 테슬라 장치를 이용하여 '섬광In a Flash'이라는 공연을 선보이는 데 비해, 영화에서는 보든의 '순간이동 남자'에 대항하여 앤지어가 '신 순간이동 남자'를 선보이고 그에 맞서서 보든이 '원조 순간이동 남자'를 선보이는 등, 보다 대결 구도를 강조하는 식으로 바뀌었다.

*보든의 '쌍둥이 트릭'은 소설에서는 끊임없이 '그럴지도 모른다'는 식으로 암시를 주고 있지만 직접적인 묘사는 거의 없다. 보든의 회고록이 이상스러울 정도로 정신분열적인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것은 두 사람의 형제가 서로를 1인칭으로 부르기 때문이다), 소설에만 등장하는 캐릭터인 신문기자 코니그의 정보와 그에 기반을 둔 앤지어의 조사 결과, 그리고 막바지에 '올리비아와 같이 살던 보든이 분명 죽었음에도 또 다른 보든이 나타나 공연을 계속하며, 순간이동 마술은 두 번 다시 선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것' 정도가 결정적인 힌트로 주어진다(올리비아의 눈 앞에서 죽은 남자의 시체는 누군가의 책략에 의해 신원미상의 노숙자로 처리되어 묻혀버린다). 앤지어 역시 보든이 과연 한 사람인지 두 사람인지 끊임없이 의심하며 평생 그 비밀을 쫓지만, 결국 올리비아가 팔아치운 보든의 일기를 손에 넣을 때까지는 확신을 갖지 못한다. 소설에서도 보든의 아내 새라가 등장하지만 보든의 회상을 통해 짤막하게 언급될 뿐이며, 그의 트릭으로 인한 가정 생활의 위기나 그와 비슷한 다른 문제는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오로지 앤지어만이 '만약 보든이 쌍둥이라면 아내와 아이들, 거기에다 숨겨진 연인을 대체 어떻게 속였단 말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할 뿐, 속 시원한 해답이 주어지지는 않는다). 이로 미루어 보아 소설의 세계에서는 올리비아는 물론 보든의 가족들까지도 그가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에 비해 영화에서는 보든의 조수 팔론(그 정체는 영화의 결말에 드러난다)이란 캐릭터를 배치하고 보든의 분열적인 일면을 섬세하게 포착함으로써 그의 트릭에 따른 고충과 주변 사람들과의 갈등을 충실하게 묘사하고 있다. 처음에는 보든을 사랑했으나 점점 그의 비밀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된 아내 새라는 말다툼 끝에 자살하고, 올리비아 또한 보든에 대하여 어딘가 알 수 없는 구석이 있다고 여기게 된다. 소설이 어디까지나 앤지어에 초점을 맞추고 보든에 대해서는 상당히 신비에 싸인 인물로 얼버무린 데 비해 영화는 두 명을 상당히 공평하게 보여주면서 보다 극적인 긴장을 이끌어내고 있다고 할 만하다. 어쨌거나 놀란형제의 골때리는 시나리오와 크리스천 베일의 신들린 연기력 덕택에 영화에서도 두 명의 보든을 이놈이 누구고 저놈이 누구고 하는 식으로 구별하기란 좀 어려운지라, 감독이 공식적으로 해설이라도 해 주기 전에는 여러모로 추측을 해보며 즐기는 수밖에는 없을 듯 하다.

*앤지어의 기상천외한 순간이동 마술에 대하여 좌절감을 느낀 보든이 그의 공연 도중에 무대 뒤로 숨어들어 비밀을 캐려다가 뜻하지 않은 사고에 휘말려 난처해진다는 것은 소설과 영화가 동일하다. 그러나 그 '사고'의 내용과 그로 인한 앤지어의 운명, 그리고 보든의 결말 등은 영화와 소설이 180도 다르다(결말의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아직 작품을 보지 않은 분들을 위해 여기서는 생략한다). 이 부분에서 두 작품의 장르가 확연히 갈린다고 볼 수 있는데, 둘 다 마술을 소재로 한 스팀펑크류 사이언스 판타지의 영역에 자리하면서도 실제 내용을 다루는 방식이나 스타일은 엄청나게 다르기 때문이다. 소설 쪽이 보다 메리 셸리나 호레이스 월폴의 전통을 잇는 영국제 고딕 호러에 가깝다면, 영화는 명백히 놀란 감독의 장기를 십분 발휘한 본격 범죄 심리 스릴러에 가깝다. 각 작품을 감상할 때 이점을 염두에 두고 본다면 훨씬 재미나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솔직히 소설 다 읽고 나서 느낀 감상은 '용케도 이런 산만한 호러소설을 갖고 저런 동인지를 만들 생각을 했군... 놀란, 역시 무서운 아이!'였지만 OTL)


→다른 분들의 감상: 얼음칼님 / 태사님 / 린아님 / 폭주님 / euphemia님 / pilza2님
by 잠본이 | 2006/11/19 14:53 | 대영도서관 | 트랙백 | 핑백(2)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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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ed at [ toonism world .. at 2008/01/04 11:35

... 스찬 베일이 연기했다)과 루퍼트 앤지어(휴 잭맨이 연기했다)의 찌질한 투닥임 이야기. ('찌질한 투닥임'이라는 표현은 잠보니 님의 블로그에 댓글을 다신 Honey 님의 댓글에서 인용.)소설이 좀더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에 주력했다면, 영화는 스릴과 미스터리에 더 주력한 듯. 소설에는 중간중간에 복잡하고 지루하고 집중력 떨어질 만한 부분들이 ... more

Linked at 프레스티지 &#8211; 앤서블 at 2016/11/22 00:38

... 느낀 감상은 &#8216;용케도 이런 산만한 호러소설을 갖고 저런 동인지를 만들 생각을 했군&#8230; 놀란, 역시 무서운 아이!&#8217;였지만 OTL) ※원문 작성: 2006-11-19 장편크리스토퍼 프리스트판타지 Previous article Be the first to comment Leave a Reply 응답 취소로그인을 해야 댓글을 남길 수 ... more

Commented by 태사 at 2006/11/19 20:19
(첫 코멘트 붙여봅니다, 안녕하세요:D) 프레스티지 요 영화가 거시기 참 소설이고 영화고 어디서 말 한번 꺼내기가 참 무서운 거이라 코멘트 남기기가 참 무섭네요>ㅛ<;; 영화보고 좋다고 소설 냅다 들었다가 짜게 식었던 기억을 잠본이님 포스팅을 보고 다시 짜게 절이고 있삽니다. 소설 보고 얻었던 건 정말 앤지어가 엄친아수준의 인물이었다는 것 밖에 없었어요... 정말 놀란 브라더스가 기똥찬 동인지 한권 냈지라*-_-* 링크추가하고 가겠습니데이!
Commented by hansang at 2006/11/19 20:40
자세한 리뷰 감사드립니다. 소설도 한번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Commented by 두르가 at 2006/11/20 10:18
새라의 조카가 '불쌍한 새가 죽었어!'하고 울부짖는 장면이 테슬라 기계를 이용한 앤지어 마술의 복선이 되는군요! 미처 그 부분은 생각지 못했지만, 꼬마애가 '또 한 마리의 새는 어디갔지?(기억이 분명친 않지만 'Where is his brother?'라는 대사로 표현되었던 것 같은데..)하고 물어보는 장면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한 명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두 명이 있었던(새 한 마리가 아닌 두 마리가 쓰인 것처럼) 보든형제의 비밀을 암시하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장면 하나로 보든과 앤지어 양쪽의 복선을 둘 다 드러내다니, 놀란 형제야말로 최고의 트릭스터네요~!
Commented by 실버 at 2006/11/20 10:42
오오 책을 꼭 읽어봐야겠는걸요. 리뷰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darkwalker at 2006/11/20 10:49
정말 자세한 리뷰로군요. 책과 영화의 대비가 잘 느껴집니다.
왠지 올드보이가 연상되는군요.
Commented by eponine77 at 2006/11/20 13:57
예상보다 훨씬 길고 자세한 글을 읽었습니다. 덕분에 원작을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런데 이 글만 읽고 생각하면 저 원작을 가지고 저런 대본을 쓴 놀란 형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머리에 쥐가 많이들 기어다녔을 텐데...^^
Commented by 히치하이커 at 2006/11/21 21:22
이런 게 있었군요. 개인적으론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보면 실망을 많이 하게 되던데...머릿속으로 상상했던 게 무너지는 느낌이랄까요? ㅋ (유일한 예외는 반지의 제왕입니다 ^ ^;) 이건 뭐 영화를 먼저 봤으니 상관없겠죠. ^ ^ 암튼 잘 보고 갑니다.
ps. 아하하~블로그 시작한지 이제 2주 가량 됐는데 님의 트랙백이 저의 포스팅에 대한 유일한 반응(?)이랍니다. 음...ㅡ ㅡ;
Commented by 강설 at 2006/11/28 14:18
정리를 정말 잘하셨네요 잘 읽고갑니다
Commented by Honey at 2006/11/29 01:57
음... 소설이 더 재미있어 보입니다. 영화는 사실 스토리나 구성같은 것 보다는 두 배우들의 연기와 감독의 연출에 실망했었거든요. 일생을 건 처절한 사투를 보고 싶었는데 찌질한 투닥임에서 그쳤다는 느낌^^;;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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