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영화는 'THE CLUE'라는 원제는 똑똑히 기억나는데 오히려 국내 방영 제목이 뭔지 도저히 생각이 안 나서 난감한 경우이다. 역시 KBS쪽 채널에서 명화극장 시간에 보았던 기억이 난다. 장르는 연쇄살인 미스터리를 빙자한 블랙코미디 풍의 코믹 군상극(?)인데, 의외로 이 작품이 상당히 깨는 물건이었다. 내용이 아니라 형식 면에서 깬다는 얘기지만.
내용은 이러하다. 커다란 저택에서 파티인가 무언가의 이유로 많은 손님들이 한데 모인 가운데 집 주인인 부자 양반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모여든 사람들은 서로서로 의심하며 암중모색을 거듭한다. 그들 중에서 금발의 잘생긴 청년 주인공(성우는 우리의 영원한 1대 다르타냥 김세한씨)이 탐정역을 자처하며 나서서 빼어난 추리로 범인을 밝혀낸다...라는 식으로 전개되는데, 단순히 그것 뿐이었다면 이런 싸구려 영화가 내 기억에 남아있을 리가 없다. 이 영화는 그러한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다분히 실험적인 구성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어떤 구성인고 하니, 영화 전체가 4파트로 나뉜다. 처음 파트에서는 사건이 일어나고, 그 뒤 '이랬을지도 모릅니다'라는 자막과 함께 두 번째 파트로 넘어간다. 두 번째 파트에서는 청년이 손님들 중 A라는 사람을 범인으로 지목하여 열심히 그를 옭아맨다. 그러고는 해피엔딩으로 막이 내리나 했더니... '또는 이랬을지도 모릅니다'라는 자막이 뜨고 갑자기 3번째 파트로 넘어간다. 여기서는 다시 사건이 일어난 직후 혹은 그 뒤 어느 시점으로 되돌아가서 청년이 B라는 사람을 범인으로 몰아간다.
그리하여 이젠 진짜 끝인가보다...라고 생각한 순간, '그러나 진실은 이랬습니다'라는 자막과 함께 최종 파트가 뜬다. 여기서는 다시 3번째 파트가 시작한 그 시점으로 돌아가서, 전혀 의외의 진범이 밝혀지고야 만다...라는 구성인데, 이 마지막 파트가 진짜 깬다. 이제까지 탐정역을 맡았던 그 미청년이 실은 범인이었고, 오히려 너무 평범해서 별다른 인상을 주지 못했던 다른 손님(아마도 트렌치코트의 비쩍 마른 중년남이었던 걸로 기억하지만 확실치는 않다)이 탐정역을 맡아 그의 범죄를 폭로해버리는 것이다.
'극중의 시간 역시 현실과 마찬가지로 하나만 존재하며 일직선으로 흐른다'라는 단선적인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던 어린 소년 잠본이는, 그렇게 해서 멀티 스토리의 재미에 눈뜨게 된 것이었다. (...2파트와 3파트만 놓고 보면 이후 화제가 되었던 이휘재의 인생극장과 별다를 게 없지만, 4파트에 가서는 아예 상식을 뒤집어버리는 전개로 나가버리니... 우우 멋진 제작진)